본문 바로가기
사회

AI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다...'평가 방식 바꿔야'

서울대학교 AI 서밋'에서 비전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가에서 교수들의 고민이 크다고 한다. 시험 과정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몰래 활용한 '집단...

AI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다...'평가 방식 바꿔야'

[김희연의 AI시대 인(人)사이트 63]

AI시대 위험성은 '지식 부족'이 아닌 '판단의 외주화'

대학, '질문을 설계하고 충돌시키는 공간'으로 변모해야

AI시대 대학, 정답 아닌 해답의 설계 과정을 평가해야

서울대 유홍림 총장이 지난 2일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열린 '2026 서울대학교 AI 서밋'에서 비전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가에서 교수들의 고민이 크다고 한다. 시험 과정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몰래 활용한 '집단 부정행위' 때문이다.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도 AI의 무분별한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를 두고 혼란이 커지고 있다.

물론 규칙을 어긴 학생의 책임을 완전히 덜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우리는 더 불편한 질문을 피하게 된다. 왜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했는가. 이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신호다. '정해진 지식의 재현'을 평가하는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고에 가깝다. 시대가 변했는데 평가만 멈춰 있다면, 기술을 활용한 학생을 탓하는 일은 과연 공정한가.

AI는 지식을 즉시 호출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학생의 머릿속에서 '직접 꺼내라'고 요구한다. 암기와 지식에 기반한 정답 찾기는 이미 기계가 더 잘하는 영역이다. 과거 공학용 계산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을 금지하려 했지만 지금은 계산기를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AI는 이미 전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기반이 되었다. 이제 금지의 문제가 아니라 "활용의 질"을 묻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평가의 기준도 '무엇을 아는가'에서 '어떻게 묻고 연결하는가'로 옮겨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사고의 과정, 질문의 설계, 맥락의 엮임을 평가해야 한다.

정답을 넘어 해답을 찾아서

컴퓨터와 공학용 계산기, 그리고 엑셀이 보급되기 전까지 계산 능력은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전문성이었다. 그 시절엔 암산과 주판 활용 능력이 전문성이었다. 그러나 전자 계산 도구가 범용화하면서 계산은 더 이상 차별화된 능력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두뇌가 약해졌을까. 오히려 우리는 손으로는 다룰 수 없던 수준의 데이터와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계산에 쓰이던 시간을 줄이는 대신, 무엇을 계산할지 정의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됐다. 생산성은 높아졌고, 이전에는 시도할 수 없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정답(正答)’은 이미 정해진 바른 답이다. 반면 ‘해답(解答)’은 엉킨 실타래를 풀듯 상황과 맥락에 맞게 구성해 나가는 나만의 답이다. 과거의 대학은 정답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사람을 선별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답은 누구나 즉시 호출할 수 있는 ‘기본값’이 되었다. 정답은 더 이상 목적지가 아니라 사고의 ‘출발점’일 뿐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판단의 외주화'

AI 시대의 진정한 위험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판단의 외주화'에 있다. AI는 문장과 논리, 심지어 판단처럼 보이는 결과물까지 즉각 만들어낸다. 이때 아무런 질문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순간, 사고는 생략되고 복사만 남는다. 문제는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지금 대학에 필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질문의 훈련'이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AI의 답변을 어떤 기준으로 걸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질문해야 하는지. 이 질문의 연쇄 과정 자체가 곧 현대적 의미의 사고력이다. 이제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세상을 해석하고 정의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대학, '질문을 설계하고 충돌시키는 공간'

대학의 수준은 더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지식 사이의 간극을 읽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대학은 세 가지 핵심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첫째가 파편화된 지식 사이의 관계를 읽고 융합하는 힘, 즉 연결의 능력이다. 둘째는 AI의 결과물과 자신의 상식을 끊임없이 의심해볼 수 있는 '회의(懷疑)의 능력'이다. 세번째는 주어진 문제를 그대로 풀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재정의(再定義)의 힘'이다.

이 세 가지는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 이미 그렇게 인재를 선발한 사례가 있다. 조선의 과거제는 같은 경전을 두고도 누가 더 깊이 자신의 관점으로 풀어내는지를 겨루는 자리였다. 정해진 답이 아니라 해석의 질을 평가했다. AI 시대의 우리는, 첨단 기술을 손에 쥔 채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오고 있다. 바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글 내용에 맞추어 제미나이가 만든 이미지. (자료 = 뉴스버스)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결과가 아닌 '사고의 궤적' 으로

이제 대학의 평가는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리포트의 완성도보다 그 리포트를 쓰기 위해 AI와 주고받은 '질문 → 수정 → 연결 → 재구성'의 궤적을 평가해야 한다. 이 궤적이 투명하게 드러날 때, 학습은 비로소 기계의 것이 아닌 개인의 것이 된다. 구체적으로도 이런 방식은 가능하다. AI와 주고받은 질문의 기록을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질문에서 시작했는지, 어디서 AI의 답을 거부하고 다시 물었는지, 최종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이 궤적이 곧 평가 대상이 된다. AI는 부정행위의 도구가 아니라 사유(思惟)와 사고(思考)의 현장 기록이 된다.

물론 이 전환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지식의 정확성과 양은 비교적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의 질과 사고의 과정, 해석의 차이를 평가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수고를 요구한다. 평가자의 시간과 역량, 그리고 기준의 투명성이라는 문제와 맞닿는다. 그래서 이 변화는 단번에 완성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어려움을 이유로 멈춰 있는 것은, 이미 변해버린 세계에 눈을 감는 일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다

AI는 지식을 민주화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할 것인가.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질문이 충돌하고 확장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관점이 부딪히고, 그 긴장 속에서 각자의 해답이 만들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해답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가장 공정해 보였던 시험은 답을 맞히는 시험이었고, 가장 어려운 시험은 생각을 드러내는 시험이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그 어려운 본질적인 길로 돌아가고 있다.

김희연

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과 유수 증권사의 IT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금융·증권·IT·제조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 MI·신사업 발굴·IR을 총괄했다. 퇴임 후엔 AI를 통해 현자·석학들과 대화하며 차별화 전략·리더십 해법을 탐색하는 <AI스토밍(AI-Storming) 방식> 을 창안, 관련 저작권을 갖고 있다. 현재는 이 독창적  AI활용 방법론을 기반으로 기업과 기관에 <전략 컨설팅> 및 <AI 강의> 등을 하고, 뉴스버스에 'AI시대 인(人)사이트'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감지능시대>와 최근 출간된 <리더는 AI에게 질문하지 않는다>가 있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하기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회원가입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