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들어온 AI
AI 기술로 아내 복원한 이야기 뮤지컬 ‘유앤잇’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AI로 낭독해주는 전시
AI가 그림 그리고 음악 제작…인간의 역할은?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이정은 교수는 AI와 예술의 관계를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창작 능력을 확장해 온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생성형 AI로 생성한 이미지.
이정은 경북대 교수
인공지능(AI)이 문화예술의 무대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한때 작품 속에서나 상상되던 미래 기술은 이제 창작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며 예술가의 작업과 관객이 작품을 만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제20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무대에 오른 창작뮤지컬 ‘유앤잇’은 AI가 예술의 소재를 넘어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이 AI 기술을 통해 아내의 기억과 모습을 복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초연 당시만 해도 AI는 다소 먼 미래의 SF적 소재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 전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데이터로 복원할 수 있다면 그것을 진짜 재회라고 할 수 있는지, 인간의 감정과 기억까지 기술이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AI가 문화예술의 창작 현장으로 들어오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역사와 전시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해 관람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고령과 대구에서 열리는 ‘IT(잇):다, 1907-AI로 잇는 국채보상운동’ 전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에 생성형 AI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했다. AI 낭독, AI 채팅, 데이터월 등을 통해 관람객이 역사적 인물과 기록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처럼 AI는 문화예술에서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창작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관객과 작품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AI는 앞으로 예술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고 영상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 예술가에게는 어떤 역할이 남게 될까.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이정은 교수는 AI와 예술의 관계를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창작 능력을 확장해 온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음은 이정은 교수와의 일문일답.
△AI가 예술 창작에 활용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생각을 구체화하고 여러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일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어떤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빠르게 확인하고 다양한 방향을 반복해서 탐색할 수 있다. 완성작을 만드는 과정 전체가 단순해졌다기보다 발상을 구체화하고 확장하는 탐색 과정이 수월해졌다. 특히 다른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에서도 전문가와 협업하기 전에 스스로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기 탐색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면서 다른 매체나 분야에 대한 접근과 실험도 쉬워졌다.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AI
아이디어 구체화·확장하는 탐색 과정 쉬워져
창작 구조 변화 기여…보조자 넘어 파트너로
다른 예술적 언어 잇는 융합 창작 활발해질 듯
△AI를 예술 창작의 새로운 도구로 봐야 할까. 아니면 기존의 도구와는 다른 차원의 창작 파트너로 봐야 할까.
-생성형 AI도 현재는 이미지·음악·영상 제작을 돕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생성 과정의 예측불가능성이나 변형, 인간과의 상호작용 자체가 새로운 표현적 특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생성형 AI는 작가의 입력에 따라 결과를 제시하고 그 결과가 다시 작가의 선택과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존의 도구와는 다른 관계로 작용한다. 따라서 단순한 도구라기보다 창작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는 협업적 파트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작품의 의미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작가의 몫이다.
△AI로 인해 예술가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예술가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나.
-미술사를 보면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가 담당하던 재현의 의미와 역할이 재조정됐다. 기계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회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됐다. 생성형 AI 역시 예술가의 역할과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AI가 다양한 결과를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동시에 완성된 결과만이 아니라 어떤 과정과 의도,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관점도 중요해지고 있다. 예술가의 역할이 줄어든다기보다 무엇을 예술적 가치로 볼 것인가, 작품에서 인간의 경험과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인간 예술가만의 영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은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얻은 경험과 정보를 자신의 삶과 맥락 속에서 고유한 의미로 전환한다. 같은 경험도 개인의 기억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체화된 경험과 개인적 서사는 예술의 중요한 원천이다. AI가 인간의 창작 방식을 정교하게 모방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어떤 경험과 질문에서 작품이 출발했으며 그것이 작가의 삶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예술에서는 신체적 경험, 우연과 실패,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발생하는 상황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의 경험에서 출발해 그것을 자신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은 결과물의 완성도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에 AI를 접목함으로써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인간이 쉽게 구체화하기 어려웠던 개념이나 관계를 새로운 형태로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문화예술 정보를 장르와 시대를 넘어 연결하고 조합하면서 서로 다른 작품이나 개념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재구성할 수 있다. 또 예술 분야와 장르 사이의 경계가 낮아지면서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를 결합하는 융합적 창작도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공연에서는 AI가 관객이나 공연자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이미지·음악·움직임 등을 생성하면서 상호작용 속에서 작품이 변화하는 새로운 방식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려되는 점
인간 사고 앞서 나가는 AI, 인간 주도성 약화
동일 데이터 학습에 따른 예술적 다양성 후퇴
데이터 이용 기준·책임 등 법적 기준 마련해야
△반대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창작과정에서 AI의 생성 결과가 작가의 사고와 판단보다 앞서 작가의 주도성이 약화될 가능성이도 배제할 수 없다. 생성형 AI는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된 형태의 결과를 제시하기 때문에 작가가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면 AI가 오히려 창작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하나는 AI의 생산성 향상이 오히려 표현의 다양성을 줄일 가능성이다. 많은 작가가 비슷한 생성 시스템과 데이터를 사용하면 결과가 기존의 익숙한 시각적 패턴이나 특정한 미적 경향으로 수렴할 가능성도 있다. 작가의 생산성은 높아지면서도 결과의 다양성이 감소할 가능성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AI가 기존의 이미지나 음악 등을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나.
-AI가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원작자의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학습과 생성에 이용되는 데이터의 출처, 원작자의 동의, 이용 범위와 보상 등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알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AI가 어떤 자료와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도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기존 저작권 개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이용의 기준과 책임, 보상에 대한 법적·윤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유채현기자 ych@idaegu.co.kr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