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숙제가 된 시대
[박길선 애그테크, 농민 옆자리에 앉다 19]
“올해는 정말 여름 농사짓기가 무섭네요.”
최근 농촌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들려오는 공통된 탄식이다. 농경 역사에서 여름이 덥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지금 농민들이 체감하는 더위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더위는 더 길어졌고, 예측은 무색해질 만큼 불규칙해졌다. 폭염(暴炎)은 시설 하우스를 40도 이상의 찜통으로 만들고, 열대야는 작물의 호흡을 방해한다. 극한 호우는 공들여 키운 한 해 농사를 순식간에 수중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이러한 기후의 변곡점 위에서 농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제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키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버티느냐?’가 되었다. 아무리 우수한 품종을 심어도 작물이 환경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혹한 생존 게임에서 다시 주목받는 작물이 토마토다.
기후 변화로 인해 ‘키우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숙제가 된 시대. 잎사귀 사이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어린 토마토의 모습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류가 지켜내야 할 생명력을 상징한다. [촬영 히포팜텍]
♤기후 위기의 대항마, 왜 다시 토마토인가?
토마토는 원산지인 고산지대의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진화해 온 덕분에 고온에서도 생육을 이어갈 수 있는 맷집을 갖췄다. 또한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 ‘무한 신장형’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환경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회복 탄력성이 좋다.
그래서 많은 농가에서는 "여름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작물"로 토마토를 다시 선택하는 추세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진실이 있다. 토마토는 환경을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전통적인 방식의 ‘농업’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하늘에 맡기는 농사에서 환경을 설계하는 기술로
여전히 많은 농가가 비닐하우스와 경험에 의존하지만, 현재의 기후는 그 경험의 데이터베이스를 완전히 벗어났다. 이제는 작물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스마트팜 환경 제어 기술이 등장한다.
온도를 낮추는 포그 시스템, 습도를 관리하는 제습기, 부족한 일조량을 보충하는 식물 LED 광원 등을 통해 ‘환경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토마토는 이러한 기술적 개입을 가장 정직하게 결과물로 보여주는 작물이다. 결국 지금의 농사는 변해버린 외부 환경과 이를 통제하려는 기술 간의 정밀한 조율 과정이다.
이상 고온과 불규칙한 기후는 전통적인 농사 방식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토마토는 환경 제어 기술을 통해 설계된 최적의 조건 안에서 기후 위기의 대항마로서 꿋꿋하게 열매를 맺는다. [촬영 히포팜텍]
♤기술이라는 양날의 검
하지만 기술이 만능은 아니다.
막대한 초기 비용이 수반되며, 데이터가 쏟아져도 그것을 분석하여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토마토는 잘 자라는데 농사는 힘들다.“
이 말의 이면에는, 작물의 생존 한계점보다 농가의 경제적·기술적 피로도가 더 빨리 찾아오고 있다는 위기감이 서려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최첨단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작물을 ‘지속 가능하게’ 다루는 방식의 혁신이다.
히포팜텍이 단순히 광원을 만드는 것을 넘어 농가마다 다른 환경 데이터에 천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공 광원은 단순히 빛을 내는 도구가 아니라, 농부가 제어할 수 없는 ‘자연광의 불확실성’을 ‘계산이 가능한 상수’로 바꾸어주는 환경 설계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자연에 순응하는 단계를 넘어, 기술을 도구 삼아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짜내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하늘에만 맡기는 농사에서 벗어나 기술로 환경을 설계하는 단계로. 일정한 간격과 속도로 자라나는 토마토의 생육 데이터는 기후 불확실성을 상수로 바꾸는 스마트 농업의 핵심 지표가 된다. [촬영 히포팜텍]
♤차이를 버텨내는 농업을 향하여
지금의 농업은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기술, 그리고 변해버린 기후 사이의 '간극'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토마토는 여전히 잘 자란다.
하지만 농사는 잘 자라는 것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변해버린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걸맞게 환경을 조절하며, 기술을 도구 삼아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길선은 독일연방화훼협회(FDF)의 플로리스트 자격과 독일상공회의소(HK)의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고, 2015년과 2016년 인천기능경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플로리스트 마이스터로서 꽃과 식물의 언어를 먼저 배운 뒤, 첨단농업의 현장을 꾸준히 관찰해 왔으며, 특별히 농부의 옆자리에 앉아 식물과 기술, 그리고 소비자라는 다원의 가치를 기록해 나간다. 현재 ㈜팜텍에서 글로벌 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식물조명과 재배 환경 기술 등 애그테크 분야의 경영과 기획을 총괄한다. hippof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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