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자본주의와 노동 재편, 자본가의 자동화 집중 분석
생성형 AI 시대의 생태적 대안과 기술정치 방향 논의
도서출판 갈무리와 서울과학기술대(이하 서울과기대) 미래이후연구소는 지난 9일 『비인간 권력』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는 국제 공동 웨비나를 개최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웨비나는 『비인간 권력』의 공저자인 캐나다 웨스턴대 정보미디어연구학부의 닉 다이어-위데포드 교수, 아틀레 미콜라 쇼센 교수, 제임스 스타인호프 아일랜드 더블린대 교수(정보커뮤니케이션학부)의 발표와 국내 연구자 김소형 서울과기대 강사(CATS Lab 연구위원), 신현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문화연구자), 이광석 서울과기대 미래이후연구소장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왼쪽부터 제임스 스타인호프 아일랜드 더블린대 교수(정보커뮤니케이션학부), 아틀레 미콜라 쇼센 캐나다 웨스턴대 교수(정보미디어연구학부)이다. 사진=『비인간 권력』 출간 기념 국제 공동 웨비나 유튜브 영상 캡처 후 제미나이로 보정
이번 행사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술 혁신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하부구조이자 권력 형식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됐다. 발표자들은 생성형 AI와 에이전트형 AI의 급속한 확산 속에서 노동, 자본, 데이터, 자동화, 생태의 관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닉 다이어-위데포드 교수는 기조 발표에서 『비인간 권력』의 핵심 문제의식을 재확인했다. 그는 AI를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 구성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동화는 노동을 단순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탈숙련화, 감시 강화, 데이터 추출, 재통합의 과정을 통해 노동계급을 새롭게 재조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AI 자동화에 맞선 파업,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 군사 AI 개발 거부, 데이터 추출 저항 등을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기술정치’의 사례로 제시하며, AI 자본주의에 맞선 새로운 투쟁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아틀레 미콜라 쇼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연구 주제가 ‘노동자의 자동화’에서 ‘자본가의 자동화’로 이동했다고 밝히며, AI가 자본을 인격화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오늘날 AI 산업에서 AGI가 지능의 기준이 아니라 수익성과 경제적 가치의 기준으로 정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AI 에이전트가 점포 운영, 가격 설정, 재고 관리, 채용과 노동 통제에 관여하는 사례를 소개하며, AI가 이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본가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향후 중요한 질문은 AI가 인간처럼 사고하느냐가 아니라, 자본의 운동을 수행하는 경제적 행위자로 어떻게 작동할 것이냐는 점이라고 밝혔다.
제임스 스타인호프 교수는 AI 산업의 핵심 데이터 학습 자원으로 부상한 ‘합성 데이터’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그는 시뮬레이션, 생성 모델, 데이터 증강 등을 통해 현실 세계의 수집 없이도 훈련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AI 자본의 새로운 자동화 충동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합성 데이터는 프라이버시, 비용, 편향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동시에 기존의 데이터 수집·라벨링 노동을 자동화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노동을 불러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데이터 집약적 자본주의에서 생산 및 유통 조건들의 생산 자체가 자동화되는 장면으로 규정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발표 내용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폭넓게 전개됐다. 김소형(서울과기대)은 AI가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적 기술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저자들이 제시한 ‘거부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또한 인간 노동을 의식과 분리해 이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코뮤니즘적 AI와 비인간적 코뮤니즘의 정치적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신현우(한국예술종합학교)는 『비인간 권력』이 AI 광풍 속에서 맑스의 노동가치론을 현대적으로 갱신한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AI를 개별 기술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이자 생산의 일반적 조건으로 파악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오늘날의 현실이 ‘노동하는 AGI’보다 ‘자본가 또는 봉건 영주가 되는 AI’의 가능성에 더 가까운 것 아니냐고 지적하며, 빅테크 독점과 기술봉건주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이후연구소장은 마지막 토론에서 AI 독점의 새로운 특성과 수직적 하부구조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희귀광물 채굴, GPU,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플랫폼을 포괄하는 인프라 독점이 오늘날 AI 자본주의의 새로운 핵심 특징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또한 저자들이 언급하듯 인공 일반 지능(AGI)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이행기 동안 AI 시스템을 떠받치는 인간 노동자들이 겪게 될 소외와 고통에 더 큰 주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감속주의와 생명 코뮤니즘, 기술생태 커먼즈와 같은 AI의 대안적 전망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청했다.
이번 학술 세미나는 AI를 둘러싼 논의가 기술 낙관론이나 단순한 일자리 대체 담론을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와 권력 재편을 분석하는 비판적 정치경제학의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AI가 노동, 민주주의, 법, 생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새롭게 조직하는 핵심 문제라는 데 공감했으며, 이에 맞서는 집합적 대응과 대안적 기술정치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행사를 공동 주관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이후연구소와 도서출판 갈무리는 이번 세미나가 『비인간 권력』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국내외 연구자들이 AI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토론하는 의미 있는 장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이광석 미래이후연구소장은 현 단계 AI와 노동 문제 관련 비판적 논의를 국내외 관련 연구자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임을 덧붙였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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