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이윤서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이 우선되면서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이 줄고 있다.
11일(현지시간) IT매체 테크레이더에 따르면 이러한 메모리 수급 압박은 2027년까지 기기 가격과 사양, 모바일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핵심은 메모리 제조사들의 생산 우선순위 변화다. 주요 업체들이 AI 시스템에 쓰이는 HBM 생산 확대에 집중하면서,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과 낸드 공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반도체 공장은 한정된 생산능력 안에서 제품별 물량을 배분해야 하는 만큼, AI용 메모리에 웨이퍼가 더 많이 투입될수록 스마트폰용 메모리 생산 여력은 줄어드는 구조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톰 마이넬리 분석가는 엔비디아 GPU용 HBM 스택에 웨이퍼가 배정될수록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용 메모리 생산 여력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시스템이 프로세서만큼이나 메모리에 크게 의존하며, 필요한 메모리 규모도 매우 크다고 짚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이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만큼, 고성능·고가의 HBM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미 공급 불균형을 체감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기존보다 제한된 물량 안에서 제품 사양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기 설계 기준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램 용량이 우선 고려됐다면, 이제는 제조사가 감당할 수 있는 원가 범위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시장 분석가들은 스마트폰 부품 원가가 15% 이상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중가형 모델은 램 용량이 줄고, 보급형 기기는 전반적인 사양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리미엄 제품군도 예년처럼 사양 상향이 이어지기보다 정체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미 PC 제조사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 만큼, 스마트폰 시장도 같은 흐름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흐름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HBM은 수익성이 높고, 일반 D램보다 제조사 마진이 크다. 이에 따라 생산 전환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장 증설이 이뤄지더라도 HBM은 적층 공정 난도가 높아 생산 확대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어렵다.
애플도 완전히 비켜서 있지는 않다. 대규모 메모리 구매와 장기 계약으로 가격 급등을 다른 업체보다 더 잘 흡수할 수 있지만, 결국 같은 메모리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규모가 작은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은 선택지가 더 좁다. 가격을 올리거나 사양을 낮춰야 하고, 수익성이 낮은 모델은 출시를 포기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모바일 AI 경쟁도 메모리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생성형 AI 모델을 탑재하고 있으며, 중국 업체들도 온디바이스 보조 기능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능은 더 많은 램과 더 빠른 칩, 더 넓은 대역폭을 요구한다. AI가 더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그 AI를 구동하는 핵심 부품 생산이 기기 본체 가격을 끌어올리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향은 제조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앱 개발사들도 달라진 환경에 맞춰 전략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매년 스마트폰 성능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는 전제가 흔들리고, 일부 모델은 메모리와 저장공간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클라우드 기반 AI의 중요성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매력적인 선택지지만 비용 부담이 큰 만큼, 다수 사용자는 원격 서버에서 AI 기능을 처리하는 방식에 계속 의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플랫폼 지배력도 더 강해질 수 있다. 애플처럼 하드웨어와 공급망에서 우위를 가진 대형 업체는 상대적으로 버틸 여력이 크지만, 소형 제조사들은 더 큰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AI 붐이 반도체 생산 지형을 바꾸면서 스마트폰 시장은 가격, 사양, 서비스 구조까지 함께 재편되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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