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96달러 ‘뉴노멀’ 경고… 물가·금리·수출 동시 압박, 반도체도 완충 한계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중동 지역 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한국 경제 성장률이 큰 폭으로 둔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아시아 평균보다 충격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앨버트 박은 4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ADB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석유·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아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더 취약하다”며 “이번 사태는 역내 다른 국가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ADB는 최근 중동 정세를 반영해 국제유가를 올해 평균 배럴당 96달러, 내년 80달러로 가정한 새로운 기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 등 주요 기관 전망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한국 경제 성장률은 기존 전망보다 각각 0.9%포인트(올해), 0.5%포인트(내년)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기존 ADB 전망치인 1.9%를 기준으로 하면 성장률이 이론적으로 올해 1.0%, 내년 1.4%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다.
유가 상승은 물가와 금리를 동시에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면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 둔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ADB는 이번 충격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일부가 손상되면서 공급 제약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액화 설비의 약 17%가 영향을 받았고 일부 주요 시설은 복구에 수년이 걸릴 수 있다”며 “유가가 전쟁 종료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 업황 개선은 일부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확대가 수출을 견인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ADB는 반도체 호황만으로 전체 경제의 하방 압력을 상쇄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수요 증가가 긍정적이지만 중동발 충격 규모가 더 크다”며 “성장률 전망은 여전히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DB는 반도체 경기와 재정 정책 효과 등을 반영한 수정 경제전망을 오는 7월 발표할 예정이다.
정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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