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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5년 전 노량진 계단 앞의 좌절감... 이제는 달라야 합니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노량진은 나에게 거대한 '성벽'이었다 매년 초겨울,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가... '인지적 경사로'가 없는 미래 교육은 또 다른 장벽이다 정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AIDT)를...

15년 전 노량진 계단 앞의 좌절감... 이제는 달라야 합니다

계단 없는 배움터, 제때 도착하는 점자 교과서... 당연한 상식이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꿉니다

노량진은 나에게 거대한 '성벽'이었다

매년 초겨울,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가 나면 수험가는 기쁨과 탄식으로 교차한다. 누군가는 노량진의 좁은 강의실에서 동료들과 '스터디'를 하며 버텼던 시간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1타 강사의 실강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 줄을 서던 열정을 추억한다. 하지만 특수교사를 꿈꾸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15년 전 나의 기억 속에 그런 '공동체의 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임용고시는 철저히 닫힌 방문 안에서 치러진 고립된 전쟁이었다.

2011년경, 임용고시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두꺼운 전공 서적이 아니라 건물의 '계단'이었다. 당시 노량진의 학원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노후했고, 휠체어를 탄 예비 교사가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유명 강사들이 포진한 학원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상가층에 위치하기 일쑤였고, 설령 엘리베이터가 있더라도 휠체어 한 대가 들어서면 다른 수강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할 만큼 비좁았다.

결국 나에게 인터넷 강의(인강)는 선택이 아닌 '강제된 격리'였다. 15년 전의 인강은 지금처럼 실시간 소통이 원활하지도 않았고, 화질조차 거칠었다. 끊기는 영상을 붙잡으며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장애 학생을 가르칠 교사가 되겠다는 내가, 정작 이 사회의 교육 현장에서는 왜 이렇게 철저히 지워져 있는가?" 17인치 모니터는 나의 창문이자, 동시에 나를 세상으로부터 가두는 벽이었다. 지식은 수혈받았으나,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동료 학습자와의 교감, 즉석에서의 질의응답, 그리고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소속감은 철저히 박탈당했다.

'특수교육'을 배우며 겪은 교육권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장애 학생의 권리와 보편적 학습 설계를 가르쳐야 할 '특수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 장벽과 싸워야 했다. 임용고시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나는 늘 '나 홀로'였다. 스터디원을 구하려 해도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는 카페나 스터디룸을 찾는 것은 또 다른 고역이었기에, 결국 나는 스스로를 방안에 유폐시켰다.

내가 느꼈던 그 고립감은 비단 물리적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가진 예비 교사를 진정한 동료로 상정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준비된 교사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실력'이 아닌 '계단'이라는 사실은, 예비 교사인 나를 끊임없이 위축시켰다. 지식은 모니터를 통해 수혈받았지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동료들과의 치열한 토론, 강사의 눈빛에서 얻는 확신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 배움의 과정에서 누려야 할 평등한 출발선은 시작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2026년 3월 31일, 법은 통과되었지만 현장은 아직 '인쇄 중'

내가 임용 준비 시절 느꼈던 그 막막함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 현장의 장애 학생들에게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26년 3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서글펐다. 이 법안은 시각장애 학생과 교원에게 점자 교과서를 '학기 시작 전'에 의무적으로 보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 2026년에 와서야 비로소 '법적 의무'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법안이 무색하게도, 최근 들려오는 현장의 소식은 여전히 무겁다. 학기 직전 교과서의 세부 내용이 수정되면서 발생하는 '추가 인쇄'와 점역 공정의 병목 현상으로 인해, 법 제정 이후에도 일부 학생들은 여전히 '글자 없는 새 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추가 제작이 지연될 때마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친구들이 새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 텅 빈 책상을 마주하거나, 단원별로 낱권 인쇄된 '임시 교재'를 받아야 한다.

배움의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 교과서를 제때 달라는 요구가 법이 되기까지 15년이 걸렸지만, 그 법조차 제작 공정의 한계라는 변명 앞에 멈춰 서 있는 셈이다. 교육부와 발행사들이 지난 4월 15일 업무협약(MOU)을 통해 디지털 파일을 30일 이내에 제공하기로 한 것은 진전이지만, 추가 인쇄 지연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인프라 확충이 없다면 '적기 보급'은 여전히 종이 위의 선언에 그칠 뿐이다.

'인지적 경사로'가 없는 미래 교육은 또 다른 장벽이다

정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AIDT)를 도입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내가 15년 전 노량진 학원의 계단 앞에서 멈춰 섰듯, 오늘날의 시각장애 학생들은 '디지털 접근성'이라는 새로운 계단 앞에 서 있다. 화면 읽기 프로그램이 수식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터치스크린 위주의 인터페이스가 장애 학생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격리'일 뿐이다.

내가 임용고시 준비 시절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은 단순히 '강의 내용'이 아니었다. 누구나 차별 없이 강의실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당연한 신뢰, 즉 '인지적 경사로'였다. 이제 15년 차 특수교사이자 강연자로서 단상에 서는 나는 말한다. 교육의 혁명은 화려한 IT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 학생과 장애 교사가 배움의 현장에서 '당연하게' 존재하는 풍경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나중은 없다, 교육은 지금 이 순간 평등해야 한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나의 임용고시는 계단 앞에서 멈춰 섰던 아픈 기억이었지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미래는 거침이 없어야 한다. 시각장애 학생이 학기 첫날 친구들과 동시에 새 교과서를 펼치고, 휠체어를 탄 예비 교사가 노량진의 가장 앞줄에서 당당히 꿈을 키우는 사회. 그것은 우리가 15년 전에 이미 이뤄냈어야 할 일들이다.

2026년의 법 개정이 단순한 종이 위의 글자로 남지 않으려면, 기획 단계부터 장애를 '상수'로 두는 보편적 설계(UDL)가 우리 교육 전반에 뿌리 내려야 한다. 더 이상 '인강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냐'는 안일한 질문으로 장애 학생들의 현장성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증명한다. 15년 전의 나에게, 그리고 오늘의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빚진 평등한 교육권을 이제는 온전히 돌려주어야 한다. 계단 없는 배움터, 제때 도착하는 교과서. 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나중은 없다. 교육은 지금 바로 여기서, 모든 이에게 평등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15년 차 특수교사이자, 세상의 모든 문턱을 낮추는 '인지적 경사로'를 꿈꾸는 강연자 박혜현입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평등하게 배우는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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