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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0주년 맞은 6·10 만세운동 국제학술심포지엄서 재조명

6·10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6·10 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와 광복회(회장 이종찬)는 5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의정원홀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연다고 2일 알렸다.

100주년 맞은 6·10 만세운동 국제학술심포지엄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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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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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6·10 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와 광복회(회장 이종찬)는 5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의정원홀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연다고 2일 알렸다.

6·10 만세운동은 1926년 6월10일 순종의 장례일을 기해 일어난 민족독립운동이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의 기운이 사그라들고,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벌어진 6·10 만세운동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됐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기조발제에서 6·10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한다. 만세운동을 전후해 조선공산당은 화요파 당원 130명이 체포되는 등 타격을 받았지만, 이때 서울파가 대거 입당해 사회주의 운동의 통일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운동가와 학생들은 옥중투쟁과 공판투쟁을 벌여 재판을 독립운동의 선전장으로 활용했다. 운동가들의 희생은 이후 사회운동과 민족운동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홍성표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당시 판결문, 신문 기사, 경찰 비밀 문서, 학교 자료 등을 종합해 학생들의 동향을 분석했다. 학생들은 하숙집, 기숙사, 선후배 관계 등 학연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만세운동에 나섰다. 지도자와 조직이 아니라, 역사 서술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주목한다. 최은진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는 순종 사망 이후 상인들이 철시하는 등 애도 활동을 통해 민족운동에 참여했다고 본다. 신주백 전 연세대 교수는 해방 이후 만세운동에 대한 남북한의 평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정리한다.

백승찬 선임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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