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 외로움의 대명사 가오나시는 스스로에게 가한 학대 때문에 괴물이 된다. 화와 분노의 아드레날린은 감마선에 쏘인 헐크처럼 자신의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 변화시키고 파괴한다. 가오나시의 탐욕과 헐크의 펑핑된 근육은 자기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보게 될 미래의 자화상이다. 센이 내어 준 경단, 그것은 사랑이란 이름의 자기 치유다. 모든 것을 삭이는 경단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바로 용서다.
2017년에 개봉되어 1,441만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죄와 벌(2017)〉의 히든 코어가 희생이었다면 2018년 〈신과 함께-인과 연(2018)〉의 히든 코어는 용서다. 천 년 전 고려 최고의 무장이었던 강림이 의형제 해원맥을 죽이자 자신을 돌봐 준 덕춘이 해원맥을 위해 다시 강림을 죽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한의 고리를 끊어 준 것은 천 년의 시간이다. 천 년 동안 49명의 망자를 환생시키면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위해 강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받고 싶었던 절절한 마음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과거와 과오를 알고 있는 강림은 과거를 전혀 모르는 해원맥과 덕춘, 둘과 저승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해야 했다. 그렇게 세 차사가 함께한 천 년은 고통의 시간인 동시에 치유의 시간이었다. 강림에게 그 천 년을 버티게 해 준 유일한 원동력은 용서란 이름의 사랑이었다.
『용서치유: 용서는 선택이다(Forgiveness is a Choice)』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의 로버트 엔라이트 교수는 용서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이 용서를 하기 전보다 많게는 수십 배까지 증가한다고 말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이전에 없었던 삶의 에너지와 증가된 집중력, 한결 편안해진 마음까지 일반적 기대치를 넘어선다고 한다. 특히 마음에서부터 출발한 소소한 변화에서 신체적 변화까지 생각한다면 용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가장 의미 있는 마음의 기적이라고까지 말했다. 특히 생리학적 건강 상태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용서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다. 용서하는 그룹을 A, 용서하지 하지 않는 그룹을 B라고 임의로 나누었다. 통제된 조건 속에서 진행된 이 실험에서 용서하는 A 그룹은 용서를 하지 않는 B 그룹에 비해서 심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누가 물었다. “교수님 그럼 용서는 어떻게 하죠? 용서만 하면 몸이 좋아지는 거예요?” 이런 질문은 성급한 나머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오랫동안 쌓인 먼지를 터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마음의 앙금이 그렇게 빨리 없어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용서에도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참 많은 일들을 경험한다.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하려고 상담을 요청하는 부부들을 만나면 상담 직전에 이미 현재의 상태와 미래의 상황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상담사의 직감이라고 하기에는 몸짓이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직감적으로 두 사람의 눈빛에서 사랑의 온도를 느낀다. 때론 나의 이러한 직감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나의 직감은 유명한 쪽집게 점쟁이처럼 빗나가는 법이 없다. 관계회복을 위해 상담사를 찾아오는 것은 같지만 해결의 노력을 보이는 부부들은 힘들지만 눈을 짧지만 마주 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부부들과 서로 눈빛을 교환하지 않는 부부들은 관계회복이 아주 더디거나 아니면 파탄이다.
그만큼 몸의 대화는 본능에 충실하며 언어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인사는 경제적 효용성, 사회적 관계성, 심리적 안정성, 미래의 담보성까지 한꺼번에 네 가지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힘이 있고 새끈하게 호흡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그래서 인사에는 ‘face to face’의 의미와 ‘I see you’의 의미가 동시에 읽혀져 ‘눈부처’의 보석 같은 단어가 탄생하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눈을 마주치고 다가가는 인사를 ‘먼저 나를 열고, 타인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어떤가? 표현까지도 아름답지 않는가? 용기를 더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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