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시행하려던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한 차례 더 유예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유예를) 검토 중이며 결정된 바 없다”였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5일 “당정 협의에서 유예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으로 얻은 연간 이익 중 기본공제액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에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2020년 12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 2022년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과세 인프라와 투자자 보호 제도 미비 등을 이유로 세 차례 유예됐고, 곧 네 번째 유예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예가 필요한 이유로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국제 정보 교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의 가상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 참여가 2029년으로 늦어져서 과세하려 해도 절반에 가까운 거래 정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우선 시행하고 차후에 보완할 수도 있다. 외국과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가상자산에 과세하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에도 유예를 택한 진짜 이유는 청년층 여론 악화를 우려해서일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자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44%에 달한다. 가상자산은 청년층이 자산을 불리는 지렛대라는 인식이 크다. 가상자산 차익에 세금을 매긴다면 안 그래도 20%대(한국갤럽 기준)인 20·30세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예정대로 내년에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면, 첫 종합소득세 신고가 총선(2028년 4월) 직후인 2028년 5월에 이뤄진다.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며 여당에 악재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과세를 미룰 수는 없다. 한국 사회는 개인 간 소득 격차보다 자산 및 자본 격차가 극심해 양극화의 주범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노동 소득엔 빠짐없이 누진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데, 자본 소득에는 적절한 세금이 매겨지지 않아 사회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추가 유예는 없다는 생각으로 과세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다음엔 또 대선 때문에 유예할거야’라는 예견을 틀린 말로 만들어야 한다.
꼬인 실타래는 2024년 폐지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재도입과 함께 풀어야 한다.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매기는 금투세가 폐지됐을 때,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래 규모가 크고, 언제, 어디서 사고팔았는지가 명확한 주식의 차익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과세 범위와 근거에 논란이 많은 가상자산에만 세금을 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금투세 재도입에 따른 파고를 다시 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금투세 재도입에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긴다’는 원칙을 회복한다는 명분이 있다. 원칙을 회복한 후에는 왜 주식 양도차익만 세금을 내고 가상자산은 안 내느냐는 문제제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금투세 재도입은 가상자산 과세의 가장 큰 동력이자 필수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조미덥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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