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한동대 총장
유럽은 1970년대 전 세계 GDP의 40%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2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아시아는 10% 중반에서 30% 후반대로 상승했다. 명목 GDP 기준으로 보면 유럽 경제가 퇴보한 만큼 아시아 경제가 발전했다. 미국은 변화가 있지만 20% 중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1인당 GDP 로 보면 일본은 거의 5만불까지 접근했다가 2022년 우리나라에게 추월 당했다. 왜 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루이비통, BMW, 토요다 등을 수출하고 있는데, 미국과 같은 혁신 기업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폭스바겐의 전 CEO 헤르베르트 디스가 폭스바겐을 전기자동차 회사로 전환을 시도했을 때, 기존 사업에서 신사업으로 전환 시 엄청난 비용과 함께 기존 인력들의 조직적인 반대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의 벤처생태계를 통해 백지에서 새롭게 사업을 설계하는 스타트업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독일은 미국에 비해 벤처 투자가 10분에 1도 안되고 그나마 창업한 독일의 스타트업도 미국의 투자를 받고 미국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대의 키워드는 초연결, 플랫폼, 생태계 등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신사업을 하는 방식은 탑다운 방식인 반면, 벤처생태계는 바텀업이다. 바텀업 방식은 한정돼 있는 경제자원을 다양한 기업들이 접근해 집단지성이 형성되어 내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혁신이 일어난다. 학교를 통한 문자와 지식의 보편화와 주식회사 제도를 통한 투자의 보편화에 이어 연구개발이 대기업 중심에서 보편화되어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리이다.
혁신 생태계는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구축하기가 어렵다. K-Pop과 K-Drama 등의 큰 성공에 한 영화감독에게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 여기며 질문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이들을 담을 한국형 플랫폼을 만들지 못해서 넷플릭스에 이익을 다 빼앗기고 있다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우리는 미래먹거리를 위해 연구를 장려한다. 논문 발표와 학생 배출을 넘어, 실제 신사업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벤처생태계다. 모든 부가가치는 인력에서 나온다. 벤처생태계에서는 자본이익을 기반으로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우수한 인력을 유입했다. 뛰어난 인력과 금융이 융합한 벤처생태계는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생산해 시대 정신을 이끌고 있다.
기업은 창업부터 손익분기점까지 수입보다 지출이 크기 때문에 외부자금이 필요하다. 창업부터 손익분기점까지 자금 확보로 버텨야 하는 구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 생존을 위한 자금 확보가 초기 기업의 숙제이자 위험 요인이다. 과거에는 이 자금을 초기 자본금, 다른 사업에서의 영업이익, 이자와 같은 금융비용을 지불하는 융자 등을 통해 해결했다.
벤처생태계에서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벤처캐피털에 액면가의 몇 배로 지분을 양도하면서 얻는 자본이익으로 이를 해결한다. 벤처투자는 초기 낮은 성공 확률을 가진 벤처기업에 분산투자해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미래 가치를 주가에 반영해 상장이나 인수합병에 성공해 회수가 되면 투자금을 상회하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1980년부터 미국 상위 25% 벤처캐피털은 지난 40년간 평균적으로 20% 이상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했고 성공한 벤처기업 CEO는 당대에 조 단위 부자까지도 될 수 있다.
과거 박사급 연구원의 취업 현황을 살펴보면, 국가연구소와 대학 등에 30%, 대기업연구소에 70% 정도 진출한다. 하지만 벤처생태계를 구축한 미국은 현재 박사급 연구원의 30%가 벤처생태계에 진출하고 있다. 구글의 인사 담당 이사가 “올해 100만 개의 이력서를 받았지만 내가 정말 찾는 인력은 벤처를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듯, 뛰어난 역량과 열정을 가진 이공계 박사 인력이 벤처 창업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연구중심대학에서 우수한 교수를 초빙했는데, 벤처기업을 창업해 대학교수 임용을 포기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벤처생태계가 구축된 지역을 ‘벤처밸리’라고 부른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대표적인 벤처밸리이다. 실리콘밸리를 설명하는 모델 중 하나가 ‘볼텍스 대학 모델(Vortex University Model)’이다. 대학을 벤처밸리의 핵심 요건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 벤처밸리가 있는 도시에는 모두 연구중심대학이 있다. 연구중심대학은 특허로 기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연구 기능과 주당 100시간씩 일을 할 수 있는 도전적인 젊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을 ‘웨이 포인트 대학(Way Point University)’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길(way)에서 대학을 하나의 점(point)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볼텍스 대학은 대학 주변에서 소용돌이(vortex)처럼 돌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연구한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대학 주위에서 창업하고 대학과 협력해서 연구와 상용화를 지속한다. 초기에는 동문 중심의 창업생태계가 형성된다. 초기 창업생태계가 경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가져 외부 대학 출신들도 참여해 개방형 창업생태계로 발전한 게 실리콘밸리이다.
우리나라는 시대에 맞는 교육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1950년대에는 문맹이 80%였기에 이승만 정부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초등교육인 국민학교를 의무 교육화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빠르게 문맹에서 탈출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기에는 중화학공업을 위해 중후장대한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기능공 배출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기계공고와 전자공고를 만들었다. 군 면제 혜택과 기능올림픽 장려 등을 통해 시대에 맞는 인력 배출에 성공했다.
1980년대 들어 장비들의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 인력이 필요했다. 포스텍을 시작으로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이 연구중심대학으로 진화하면서 세계 수준의 연구인력을 성공적으로 배출해 반도체, 자동차, 원자력, IT, 바이오 등의 첨단산업이 가능케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배출하는 박사 인력의 30%가 벤처생태계로 진출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인력이 배출돼야 한다. 제2의 삼성, 현대, 포스코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 삼성과 현대 등이 글로벌 신용이 없었을 때 국가가 차관을 들여와 대출해주고 수입도 막아주었다.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되어 가난을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도록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대학 그리고 기업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세계적인 역량을 갖는 청년기업가들을 배출해야 할 때다. 건국 세대, 근대화 세대, 민주화 세대를 넘어 이제는 혁신 세대를 반드시 길러내길 소망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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