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독일 법학서 색인 부분(왼쪽), 17세기 독일 오페라 표제 페이지(가운데), 1963년 국민학교 1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오른쪽). 유지원 | 타이포그래피 연구자·글문화연구소 소장
독일에서 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내내 법학도서관에서 지냈다. 독일의 다른 기관들과 달리, 법학도서관만은 밤늦은 주말에도 열려 있었다. 밤낮없이 논문을 써야 했던 그 시절의 내게, 법학도들의 만국 공통 막중한 학업량은 은혜롭기 한량없었다.
머리를 식히려고 책장 사이를 배회하다가 간혹 독일 법학서들을 꺼내 들기도 했다. 법에 대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지만, 순전히 책의 만듦새와 책등의 활자체가 눈길을 끌어서였다. 나는 당시 프락투어(Fraktur) 활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우연히 손에 걸려든 것은 1940년대 제3제국 나치 독일의 법학서였다. 불의한 국가의 질서를 설명하는 어찌 보면 기묘한 물건인데, 와중에 프락투어 조판 솜씨는 정연하고도 단단했다.
프락투어를 독일에서는 20세기 전반까지 활발하게 썼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만체는 안티크바(Antiqua)라고 부른다. 그때까지 독일에서 자생한 지식과 생각은 프락투어, 독일 바깥에서 유입된 지식은 안티크바로 조판하는 인쇄 관습이 있었다. 한편, 독일 민법은 로마법이라는 외부 영향을 받았지만, 상법은 독일 관습법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진 법학서는 전후 통제 경제를 다루고 있었다. 국제적인 모델보다 내부의 제도와 경험을 따른 편이고, 당시 시대적 배경도 있어 프락투어 조판을 한 것 같았다.
20세기 중반 이전 독일의 일반 인쇄에서는 프락투어와 안티크바를 섞어 쓰는 일이 흔했다. 도판의 17세기 오페라 표제 페이지는 프랑스어에 로만체(안티크바), 독일어에 프락투어를 쓰면서 어휘의 출처를 구분한다.
한국에서도 국한문 혼용을 할 때는 한자와 한글이 구분되었다. 외래어를 활자체로 구분한 사례도 있다. 1960년대 국민학교 국정교과서에서는 도판 속 ‘베트남’같은 외래어를 순명조체로 본문 명조체와 구분해서 표기했다. 당시 교과서는 외래어를 가급적 쓰지 않으려 했고, 글을 깨우치는 어린이들이 어렵게 느낄까 봐 활자체를 구분해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는 독특하다. 한자와 히라가나를 혼용하고, 외래어는 가타카나로 표기한다. 문자체계로써 지식과 생각의 출처를 구별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자를 읽는 방식은 순일본어의 의미를 따르는 훈독과 중국 발음에서 온 음독으로 나뉜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것과 외래의 것을 구분하려는 자각을 고대부터 명료하게 가지고 있었다.
에이아이(AI)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을 타는 입구에서, 법학도서관 시절의 독일 법학서 활자체가 떠오르며 연상을 일으킨다. 나는 내면의 숙성을 통해 자생시킨 것과 에이아이라는 타자를 통해 유입되는 것이 조급하게 섞이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인간과 에이아이 간의 역할과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충분히 숨을 고르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 당시 나는 마침 독일의 타이포그래피가 한글을 만나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기도 했다.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에서 문자체계와 활자체로 내부와 외부 지식을 구분한 것은 그동안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인하려는 장치로만 여겼다. 때로 배타적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각자의 효율을 따라갔다. 이 구분은 또 타자의 유입을 마주하며 신중함을 확보하는 장치로도 작동하지 않았을까. 이 순간 숙성의 시간을 지키면서 생각한다.
독일에서 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내내 법학도서관에서 지냈다. 독일의 다른 기관들과 달리, 법학도서관만은 밤늦은 주말에도 열려 있었다. 밤낮없이 논문을 써야 했던 그 시절의 내게, 법학도들의 만국 공통 막중한 학업량은 은혜롭기 한량없었다.
머리를 식히려고 책장 사이를 배회하다가 간혹 독일 법학서들을 꺼내 들기도 했다. 법에 대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지만, 순전히 책의 만듦새와 책등의 활자체가 눈길을 끌어서였다. 나는 당시 프락투어(Fraktur) 활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우연히 손에 걸려든 것은 1940년대 제3제국 나치 독일의 법학서였다. 불의한 국가의 질서를 설명하는 어찌 보면 기묘한 물건인데, 와중에 프락투어 조판 솜씨는 정연하고도 단단했다.
프락투어를 독일에서는 20세기 전반까지 활발하게 썼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만체는 안티크바(Antiqua)라고 부른다. 그때까지 독일에서 자생한 지식과 생각은 프락투어, 독일 바깥에서 유입된 지식은 안티크바로 조판하는 인쇄 관습이 있었다. 한편, 독일 민법은 로마법이라는 외부 영향을 받았지만, 상법은 독일 관습법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진 법학서는 전후 통제 경제를 다루고 있었다. 국제적인 모델보다 내부의 제도와 경험을 따른 편이고, 당시 시대적 배경도 있어 프락투어 조판을 한 것 같았다.
20세기 중반 이전 독일의 일반 인쇄에서는 프락투어와 안티크바를 섞어 쓰는 일이 흔했다. 도판의 17세기 오페라 표제 페이지는 프랑스어에 로만체(안티크바), 독일어에 프락투어를 쓰면서 어휘의 출처를 구분한다.
한국에서도 국한문 혼용을 할 때는 한자와 한글이 구분되었다. 외래어를 활자체로 구분한 사례도 있다. 1960년대 국민학교 국정교과서에서는 도판 속 ‘베트남’같은 외래어를 순명조체로 본문 명조체와 구분해서 표기했다. 당시 교과서는 외래어를 가급적 쓰지 않으려 했고, 글을 깨우치는 어린이들이 어렵게 느낄까 봐 활자체를 구분해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는 독특하다. 한자와 히라가나를 혼용하고, 외래어는 가타카나로 표기한다. 문자체계로써 지식과 생각의 출처를 구별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자를 읽는 방식은 순일본어의 의미를 따르는 훈독과 중국 발음에서 온 음독으로 나뉜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것과 외래의 것을 구분하려는 자각을 고대부터 명료하게 가지고 있었다.
에이아이(AI)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을 타는 입구에서, 법학도서관 시절의 독일 법학서 활자체가 떠오르며 연상을 일으킨다. 나는 내면의 숙성을 통해 자생시킨 것과 에이아이라는 타자를 통해 유입되는 것이 조급하게 섞이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인간과 에이아이 간의 역할과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충분히 숨을 고르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 당시 나는 마침 독일의 타이포그래피가 한글을 만나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기도 했다.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에서 문자체계와 활자체로 내부와 외부 지식을 구분한 것은 그동안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인하려는 장치로만 여겼다. 때로 배타적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각자의 효율을 따라갔다. 이 구분은 또 타자의 유입을 마주하며 신중함을 확보하는 장치로도 작동하지 않았을까. 이 순간 숙성의 시간을 지키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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