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영화 속에는 항상 ‘로봇’이 등장한다. 2000년에 개봉한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집안일을 돕는 로봇이 우연한 실수로 감정과 지능을 가지며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2004년 영화인 〈아이, 로봇〉은 로봇이 정해진 원칙을 지키며,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동반자로 그려진다. 이런 영화 속 상상은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바닥을 움직이며 청소하던 로봇청소기를 넘어,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피지컬 AI’가 떠오르면서 홈로봇이 등장했다. 홈로봇은 물류센터는 물론, 실제 가정으로 출격할 준비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로봇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배경에는 ‘액추에이터’가 있다. 로봇의 근육이라 불리는 액추에이터는 여러 개가 결합된 복합 부품으로, 로봇의 정밀한 움직임을 제어한다. 홈로봇 시장 선점에는 액추에이터 시장도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술력을 높이며 국산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업과 국가가 나서서 활발히 펼치는 중이다.
홈로봇 시대를 연 로봇청소기
‘홈로봇’이라고 하면 영화처럼 낯선 존재가 아니다. 홈로봇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로봇청소기는 우리 일상에서 필수 가전이 됐을 만큼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보다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로봇청소기 개념을 처음 묘사한 로버트 하인리히의 책 『여름으로 가는 문』 / 위키미디어
가장 대표적인 로봇청소기는 1950년대 미국 공상과학 소설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이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 로봇청소기의 개념이 묘사된 것이 시작이다. 1985년 장난감 회사 토미(Tomy)사가 진공 청소 기능이 있는 ‘더스트봇(Dustbot)’을 출시하기도 했다.
일렉트로룩스가 선보인 상용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 / 위키미디어(Patrik Tschudin)
1996년 스웨덴의 전자제품 기업 ‘일렉트로룩스’는 최초로 상용 로봇청소기인 ‘트릴로바이트’를 공개했다. 초음파 센서가 있어 장애물을 피하기도 하는 등 좋은 성능을 자랑했지만, 벽 앞에서 멈추거나 좁은 구역을 청소하지 못하는 한계를 마주했다.
이후, 2000년대부터 여러 기업에서 활발히 로봇청소기를 내놓았으나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헤어드라이어로 잘 알려진 다이슨도 2001년 ‘DC06’이라는 이름의 제품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비싼 가격에 상용화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일렉트로룩스가 첫 출시 모델인 트릴로바이트의 양산형 모델을 당시 가격으로 240만 원(약 1,800달러)에 출시했다.
아이로봇에서 만든 ‘룸바(Roomba)’ / 위키미디어(Larry D. Moore / CC BY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2002년과 2005년에는 로봇공학자 3명이 모여 설립한 ‘아이로봇’에서 획기적인 로봇청소기 개발에 성공했다. ‘룸바(Roomba)’는 장애물을 만나면 방향을 바꾸며, 계단에서도 떨어지지 않도록 낙하를 인식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더러운 부분을 감지해 상업 로봇청소기로는 최초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출시된 ‘스쿠바(Scooba)’는 물걸레 기능이 있어 약 20년 전부터 현재 로봇청소기와 비슷한 기능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카메라 등을 통해 오염물, 장애물을 감지하는 로봇청소기. 사진은 아이로봇의 룸바 최신형 모델 / 아이로봇 제공
2010년에는 니토 로보틱스사에서 레이저를 사용한 맵핑 기술을 도입해, 로봇이 직선으로 주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15년에는 로봇청소기에 카메라를 부착해, 직접 보고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다이슨과 아이로봇이 도입했다.
이렇게 로봇청소기는 그 역사가 70여 년에 달할 정도로 우리 일상에서 도움이 되어 왔다. 이제는 피지컬 AI의 밑거름으로서 홈로봇의 또 다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로봇의 핵심, 움직임을 만드는 액추에이터
로봇이 AI를 활용해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는 ‘몸’을 통해 동작이 완성되며, 그 차이가 경쟁력이 된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관절에는 AI의 디지털 신호를 물리적 움직임으로 바꾸는 ‘근육’이 있는데, 이를 ‘액추에이터(Actuator)’라고 한다.
액추에이터(Actuator) / AI가 생성한 이미지(Google Gemini)
액추에이터는 회전력을 만드는 모터,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드라이버, 속도를 조절하는 감속기 등이 하나로 합쳐진 복합 부품이다. 로봇이 걷는 것부터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집을 수 있는 것은 액추에이터의 정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컵을 잡을 때 힘이 강하면 깨질 수 있으며 약하면 떨어뜨리게 된다. 힘과 속도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것이 액추에이터의 성능이며, 로봇의 활용 가능성을 좌우하는 것이다.
AI 휴머노이드 로봇 ‘이그리스’ / 롯데글로벌로지스 제공
액추에이터의 정밀한 기술력은 산업 현장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로봇 전문기업인 로브로스와 함께 AI 휴머노이드 로봇 ‘이그리스’의 실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실제 물류창고 현장에 인턴으로 투입된 이그리스는 의류 포장 작업을 진행하며 필요한 업무를 학습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도 높은 움직임에 현장 근무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9년 리뉴얼 당시 빕스 등촌점에 등장한 셰프봇 ‘클로이’ / CJ그룹 제공
또한, 카페나 식당에서도 사람을 대신해 음료나 음식을 만드는 로봇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빕스(VIPS)에서는 ‘푸드테크’를 도입해 매장에서 서빙 로봇이나 로봇 셰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로봇 셰프가 국수 메뉴를 직접 조리하는데 관절 움직임이 정교해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그릇에 옮기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처럼 물류 현장부터 외식 매장까지 로봇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재현하는 액추에이터 기술의 고도화 덕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액추에이터 기술이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액추에이터 국산화로 글로벌 시장 경쟁력 높여
현재 액추에이터 시장은 정밀 감속기 등 로봇 핵심 부품 분야를 ‘하모닉드라이브(Harmonic Drive Systems)’와 ‘나브테스코(Nabtesco)’ 등 일본 기업들이 60~70%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용 로봇 분야 10위권 중 4위다 / 국제로봇연맹(IFR) ‘세계로봇 2025’ 보고서
국제로봇연맹(IFR)의 ‘세계로봇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업용 로봇은 세계 4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핵심 부품에서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무역협회 등의 자료를 보면 국내 로봇 부품의 국산화율은 약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정밀 감속기와 고성능 액추에이터는 기술 장벽이 높아, 짧은 시간에 수준 차이를 좁히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우리 기업들도 부품 국산화를 추진 중이며, 정부 역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통해 감속기·서보모터·그리퍼·센서 등 ‘8대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을 2030년까지 8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에 민관이 협력해 3조 원 이상을 투자해, 로봇 핵심 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계획이다.
LG전자는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악시움(AXIUM)’을 공개하며 부품 국산화는 물론 세계시장까지 겨냥했다. 사진은 LG전자 홈로봇 ‘클로이드(LG CLOiD)’ / LG전자 제공
이런 상황에도 LG전자는 이번 CES에서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악시움(AXIUM)’을 공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로봇의 핵심 부품까지 자체 기술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통해, 완성형 로봇과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구동 기술까지 내재화하겠다는 의미다.
액추에이터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받는 상황에도 LG전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배경에는 60여 년 가전 사업을 통해 쌓인 부품 기술력에 있다. 냉장고, 건조기에 사용된 AI DD모터, 15만rpm의 초고속 청소기용 모터, 드라이버와 결합해 크기를 줄이고 효율을 높인 일체형 모터 등 연간 4천만 개 넘는 고성능 모터를 자체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악시움(AXIUM)’ 브랜드화는 단순히 부품 공급을 넘어, 향후 글로벌 로봇 솔루션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로봇은 이제 로봇청소기라는 익숙한 가전을 거쳐, 액추에이터 기술을 통해 사람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인공지능이 더해진 홈로봇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집 거실에 들어와 삶의 질을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다. 세계 곳곳에서는 사람을 닮은 홈로봇이 속속 등장하며, 테스트 단계에 놓여있다. 기술과 상용화라는 경쟁 속에서 홈로봇 시장의 발전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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