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호르무즈 열렸지만…반복되는 공급망 위기, 해법은 '다변화'

산업연구원은 반도체·자동차 부품 등 고부가가치 화물의 신속 운송 경로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번 호르무즈 봉쇄 당시 리퍼 컨테이너(냉동 냉장 컨테이너) 화물 운송이 타격을 입은 바 있기 때문이다. 봉쇄...

호르무즈 열렸지만…반복되는 공급망 위기, 해법은 '다변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4월 7일(현지시간) 2주간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하면서 중동발 공급망 충격이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이란이 해협을 완전하고 즉각적으로 개방하는 조건으로 공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란 역시 이를 수용했다. 양국은 휴전 기간간 동안 종전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다. 코스피는 장 초반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로 급등하며 5900선을 회복했고, 150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환율도 1470원대로 내려왔다. 서울 시내 휘발유 가격 역시 진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다. 전쟁 장기화 우려로 급등했던 에너지 가격과 금융시장 변동성이 일단 안정 신호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만큼 여전히 공급망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이스라엘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은 가운데 일부 교전은 지속되고 있고, 호르무즈 통항 역시 완전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내 산업계를 중심으로 지난 공급망 위기를 반면교사 삼고, 다음 충격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복되는 초크포인트 위기…“이제는 상수 된 리스크”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한민국 공급망이 특정 해상 경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다. 산업연구원이 8일 발표한 ‘미국-이란 분쟁과 글로벌 물류경로 재편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LNG와 나프타 역시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

중동 분쟁 이후 호르무즈 통과 선박은 일평균 135척에서 4척 수준으로 급감했다. 운임지수는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중동-아시아 항로 전반에서 운송 지연과 비용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며 한국 공급망 전반이 흔들렸다. 주유소 기름값은 리터당 2000원 이상으로 급등했으며, 나프타 수급 대란으로 플라스틱 관련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문제는 이런 충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에버그린 소속 선박의 수에즈 운하 좌초부터 2022년 러시아 노드스트림 가스관 폭발, 2023년 후티 반군의 수에즈 운하 통제, 그리고 2026년 호르무즈 봉쇄 위협까지 주요 해상 요충지는 계속해서 마비를 경험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이를 두고 “해상 초크포인트 경색이 비가역적으로 반복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배경에는 전쟁 양상의 변화가 있다. 산업연구원은 “저비용 드론과 미사일 등 비대칭 무기 확산으로 국가 간 전면전 없이도 해상 요충지를 마비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과거 효율성 중심으로 구축된 특정 노선 집중형 물류 구조가 이제는 오히려 취약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특히 중동은 구조적으로 더 취약하다. 호르무즈, 바브엘만데브, 수에즈 세 포인트가 밀집해 있어 하나의 분쟁이 동시에 다중 병목을 유발한다.

대체 공급망 IMEC의 부상

결국 단순 휴전 소식에 안심할 것이 아닌, 장기적 공급망 강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재편 경쟁에 들어간 상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다. IMEC는 인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도·항만·에너지·데이터 인프라를 결합한 복합 물류망으로, 미국·인도·EU·사우디·UAE 등이 참여하는 다자 프로젝트다.

IMEC는 기존 3대 초크포인트를 우회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국제 조달 기반으로 추진돼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국 일대일로와 달리 개방형 구조라는 점이 차별점이다.

특히 주요 구성국들은 한국보다 공급망 다변화에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이번 전쟁과 IMEC의 대두를 공급망 주도권 경쟁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미국은 IMEC를 통해 중동과 유럽을 경제적으로 묶고, 중국의 일대일로를 우회하는 새로운 축을 구축하고자 한다. 인도-EU FTA와 IMEC 구축이 동시에 논의되며 ‘시장+물류’ 결합 구조가 탄생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중국은 새로운 지정학 리스크에 노출됐다. 중국은 2021년 이란과 4000억달러 규모 투자 협정을 체결하며 중동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활용해 왔지만, 이번 전쟁으로 해당 축이 흔들리고 있다. 이란이 일대일로 핵심 연결축이라는 점에서 IMEC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서방 국가들의 대중국 공급망 견제 효과도 증대되는 셈이다.

물론 IMEC 역시 한계는 분명하다. 에너지 벌크 수송 측면에서 기존 해상 경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기존 노선을 중심으로 환적 인프라가 형성된 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상호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투자금융 확보도 관건이다.

다만 공급망 보완재의 성격으로 보면 긍정적이다. 산업연구원은 반도체·자동차 부품 등 고부가가치 화물의 신속 운송 경로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번 호르무즈 봉쇄 당시 리퍼 컨테이너(냉동 냉장 컨테이너) 화물 운송이 타격을 입은 바 있기 때문이다. 봉쇄 상황에서 희망봉 우회의 대안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러시아와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개발 중인 북극항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북극항로는 계절성과 인프라, 보험 문제 등으로 아직은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 이 밖에도 각 선사들의 노선 다변화 등 다양한 전략이 제시되는 중이다.

“단기 대응으로는 부족”…공급망 구조 자체 바꿔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니라 산업 전략 전환의 계기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연구원은 “향후 10~15년을 산업 전환의 핵심 시기로 보고, 공급망 재편을 중기 전략 차원에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간은 기존 산업 인력이 유지되는 마지막 구간이자, 동시에 AI와 첨단 산업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중첩형 전환기’다. IMEC 등 신물류망 참여는 건설·기계·전력·항만 등 전통 산업의 수요를 유지하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역할이 요구된다. 기업은 기존 해상 운송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생산 거점과 물류 경로를 재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인프라 협력, 통상 전략을 포함한 종합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은 “과거 효율성 중심의 물류 체계에서 벗어나 안보와 리스크까지 고려한 새로운 최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2주 휴전은 분명 시장과 공급망에 숨 돌릴 시간을 제공했다. 호르무즈가 다시 열렸지만, 특정 노선에 대한 의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충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단기 대응을 넘어 공급망 자체를 재설계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