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주요 관광지 북적거리지만 주거비 올려 서민 경제에 직격탄
내수시장 시들해 "관광객이 쓴 100유로보다 내국인 10유로가 절실"
관광산업 의존 높아 산업다변화 걸림돌 … 고급인력들 해외로 탈출
스페인 세비야에 위치한 유명 츄러스 가게 앞에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 츄러스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이 가게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사진=이코노텔링 김승희 기자.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 주변에서 스페인 광장에 이르는 도로는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하지만 바로 옆 골목 거주민들이 관광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일부는 냉소적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주거환경을 침해하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스페인은 유럽 내에서 비교적 성장률이 높은 편이지만 속을 뜯어보면 사정이 여의치 않다. 내실이 없다.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관광 등 서비스업의 팽창에 기반한 착시 현상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는 경제의 대외 변동성에 취약하다. 거기다 관광객의 과잉으로 인한 도심 임대료 폭등은 내국인의 주거난을 부추긴다. 이에 따라 주거비 부담에 짓눌린 내국인들의 소비 여력은 고갈된다.
에어비앤비(Airbnb)를 비롯한 단기 임대 플랫폼이 도시의 주요 주거지를 잠식하다보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세비아, 말라가 등 주요 도시의 월세는 지난 3년 사이 40% 이상 치솟았다. 관광객들이 뿌리는 외화로 도시의 상가는 그런대로 장사가 잘된다. 그러나 도시를 유지하는 교사, 간호사, 경찰관 등 필수 노동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 때문에 도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말라가 해변가에 있는 이른바 전망 좋은 주택들은 대부분 에어비앤비로 전환됐다. 이런 단기 임대주택들은 성수기에 하룻밤 1백만원 이상을 받는 경우가 적잖아 지난 4월 초 현지 일반주택들의 리모델링 공사도 많이 눈에 띄었다. 여름 휴가철 대목을 노리는 것이다.
관광 산업으로의 자본과 노동력 쏠림 현상은 스페인 산업 구조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말라가 해변가에 있는 이른바 전망 좋은 주택들은 대부분 에어비앤비로 전환됐다. 이런 단기 임대주택들은 성수기에 하룻밤 1백만원 이상을 받는 경우가 적잖아 지난 4월 초 현지 일반주택들의 리모델링 공사도 눈에 많이 띄었다. 여름 휴가철 대목을 노리는 것이다. 사진(말라가)=이코노텔링 김승희 기자.
제조업이 약하다보니 청년실업률은 30%에 이른다. 청년들은 제조업이나 IT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대신 진입 장벽이 낮은 관광 서비스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급 두뇌들은 해외로 구직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는 2026년 현재 스페인이 여전히 유럽 내 최고 수준의 청년 실업률과 최저 수준의 노동 생산성을 기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관광객 한 명이 쓰는 100유로보다 내국인 한 명이 매일 소비하는 10유로가 경제 기초 체력에 더 중요하다"고 경제학자들이 경고하는 이유다.
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관광 산업의 비대화와 '과잉 관광(Overtourism)'은 환경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관광산업이 낳은 '부의 혜택'은 대형 호텔 체인과 글로벌 자본에 집중될 뿐 지역 사회로 재분배되지 않는 '부의 낙수효과 실종'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관광지 주변이 아닌 일반 동네 상권들은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페인 당국은 올들어 관광세를 두배로 올리고 '주택의 단기 임대'를 옥죄고 있지만 이미 관광에 중독된 경제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요르카 지방정부는 최근 에어비엔비 등록 주택 1000여 가구를 없애 관광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현지 부동산 중개인은 "에어비앤비가 줄어드니까 이번엔 관광객들이 잘 곳이 모자라 도심 팔마에서 벗어난 외곽지에도 방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2026년의 스페인은 화려한 관광 대국의 가면 뒤에서 주거권 박탈, 저임금 노동의 고착화, 그리고 내수 소비의 실종이라는 삼중고를 겪는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 스페인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1%로 낮췄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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