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지난 4년은 우리가 예상했던 범위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통화·재정정책만으로 우리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지난 4년의 소회를 밝히며 우리 경제를 향한 제언을 남겼다.
이 총재는 금리라는 수단에만 의존하는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한은이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 임기는 전 세계적인 고물가와 금리 인상기라는 거대한 파도와 맞선 시간이었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총 32차례의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우리 경제 나침반 역할을 했다. 물가 급등기에는 금리를 6회 인상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기준금리를 3.5%까지 끌어올렸다.
금리 동결은 총 22차례 결정해 시장 불확실성을 관리했고, 경기 회복의 신호탄으로 4회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결단력 있게 운용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주요 중앙은행보다 먼저 2%대 목표 수준으로 되돌린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회했다.
하지만 임기 내내 위기 역시 끊이지 않았다. 부동산 금융 불안과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그리고 최근의 비상계엄 사태와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환율까지 초유의 충격들이 이어졌다.
이 총재는 위기 속에서도 한국형 포워드 가이던스 도입 등 시장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하며 통화정책의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다.
이 총재는 이날 이임사에서 ‘구조개혁’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조준했다.
그는 “반도체 호황으로 경기와 외환시장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나, 이는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저출생과 교육, 주거, 노인 빈곤 등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한은이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여온 행보를 언급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구조개혁은 필요하다”며 “4년 전 취임사에서 한은이 통화·금융정책 울타리를 넘어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가 되자고 말씀드렸는데, 그 마음은 지금도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과제를 계속 연구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과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말을 맺었다.
그는 “한국형 점도표 공개와 소버린 AI(인공지능) 구축 등 새로운 시도를 지지해 준 동료들의 헌신 덕분에 위기를 관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후임 총재로 지명된 신현송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통과하면 오는 21일부터 새 임기를 시작한다. 다만 채택이 불발된다면 당분간 한은 총재직 공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은은 2022년 이주열 전 총재 퇴임 후 이창용 총재가 임기를 시작하기까지 약 3주의 공백이 발생한 바 있다.
국회가 신 후보자의 보고서를 송부해야 하는 법정 기한은 23일까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