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떠난 비행기는 타클라마칸사막과 톈산산맥 빙하 상공을 지나 카슈가르에 도착한다.
"리턴 티켓이 없다고?"
지난해 5월 칭다오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공안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입국 카드를 가리키며 묻는다.
"카슈가르에서 버스 타고 파키스탄 가려고요."
카슈가르가 속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논의가 있지만, 정작 국무장관인 마코 루비오는 중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장위구르에 대한 그의 발언을 중국이 문제삼기 때문이다. 공안으로선 카슈가르에 가서 육로로 국경을 넘겠다는 외국인이 별나고 수상할 수밖에 없다. 나로선 중국의 서쪽 끝, 혜초도 머물렀을 실크로드 도시에 가고 싶었을 뿐이다. 1300년 전 신라 경주를 출발한 혜초는 걸어서 카슈가르에 갔다. 운이 좋으면 말이나 낙타, 배를 타고 온갖 위기를 넘기며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서역은 지금도 멀다. 칭다오 공항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고, 다음날 새벽 다시 비행기를 타고 란저우에 도착해 두 번째 환승을 한다. 옆자리 중국인민해방군 병사는 양발을 쫙 벌리고 몸까지 내 쪽으로 기울인 채 꾸벅꾸벅 존다. 그의 살갗을 피하느라 내내 눈살을 찌푸리는데 착륙 30분 전부터 "창문을 내리라"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카슈가르 공항이 군 기지를 겸하고 있어 보안 때문이라고.
카슈가르 고대도시의 골목길은 미로 같다.
카슈가르 고대도시의 골목에는 1970년대 동방을 찾아온 히피여행자들이 마주했을 법한 풍경이 여전히 펼쳐진다.
카슈가르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대 성채도시다.
혜초가 걸어서 갔던 도시
혜초가 이곳을 오가던 고대에는 소륵국이라 불렸던 중국의 변경에 왔다. 한족과는 인종부터 다른 곳, 중국과 서역의 경계, 실크로드 요충지, 오아시스 도시, 국경무역도시 같은 낭만적인 단어로 수식되는 곳이 카슈가르다. 혜초에 비하면 단 이틀 만에 왔지만 영어는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고, 구글맵은 아무 소용없으니 막막하긴 하다.
카슈가르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할 일은 국경통행증 만들기. 테러다 뭐다 이래저래 예민한 지역이라 국경통행증이 없으면 이동하는 게 불가능하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며 매니저에게 국경통행증에 대해 물으니 근처 경찰서에서 만들 수 있다고 했다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한 후 신시가지 이민국으로 가라고 한다. 다음날,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해 만난 이민국 공안은 여기선 안 되니 공항 근처 이민국으로 가라고 한다. 다시 택시를 타고 오후 2시쯤 이민국에 도착하니 국경통행증 발급시간은 4시30분부터라고 한다.
결국 외국인이 국경통행증을 어디서 만들 수 있는지는 대형 호텔 매니저도 모른다. 하긴 이런 질문을 할 외국인 여행객이 없다. 카슈가르에서 2주 넘게 지내도 호텔은 물론 구시가지 관광지에서조차 외국인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시간마저 이상하게 흐른다. 밤 12시, 골목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거리는 북적인다. 공항에 내렸을 때부터 전광판 시간, 구글 시간, 스마트폰 시간이 뒤죽박죽되어 지금 몇 시인지 헷갈리는데 도착 첫날, 해는 밤 10시20분에 진다.
442년 건립된 중국 최대 규모의 이슬람사원인 이드카 모스크에 오성홍기가 휘날린다.
카슈가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도시다. 중국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이국적 정취가 흐른다. '고대도시'라고 불리는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검색대를 지나야 한다. 거대한 게이트뿐만 아니라 성채를 둘러싼 모든 길을 검색대가 막고 있다. 가방을 엑스레이 검색대에 올리면 휴대용 탐지기가 내 몸을 훑는다. 처음에는 좀 긴장하기도 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검색대를 들락거리다 보니 눈치가 생겨 현지인인 척하며 가방을 검색대에 올리지 않고 모르는 척 지나가기도 한다.
'위구르의 심장'이라 불리는 카슈가르에서 검색대는 외국인·현지인 모두에게 일상이다. 골목에는 어디를 가나 CCTV가 있으니 매우 안심이 된다. 내가 어디를 가건 CCTV에 찍힐 테니 공안들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까? 한족 여자 관광객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위구르족 여인의 화려한 옷에 짙은 화장을 하고 고성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다. 한족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가를 하나둘 피하다 보면 점점 아무것도 없는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고대도시의 여운을 느껴보고 싶어 고성 안 좁은 골목을 매일 구석구석 걷는다. 골목에서 만난 위구르족 아이들은 중국소년선봉대의 빨간 스카프를 맸다.
홍링진(빨간 스카프)을 한 위구르족 아이들이 고대도시를 걷는다.
카슈가르 고대도시의 정문은 14세기 실크로드의 요새문을 복원했다.
카슈가르는 여행자의 파라다이스
"한국 사람은 처음 봤어요!" 찻집에서 만난 위구르 소녀 미나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하긴 나도 카슈가르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한국인은 고사하고 서양 관광객 한 사람 만나지 못했다. 카슈가르는 5월에도 35도를 넘나든다. 몸은 축축 늘어진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무심히 들어간 찻집에서 만난 고등학교 2학년, 열일곱 살 소녀가 미나다.
"지금은 방학이라 일을 해요. 아침 10시30분쯤 시작해 저녁 8시쯤 끝나요. 까르르, 까르르…" 세상 모든 소녀의 웃음은 비슷하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미나의 질문이 번역앱으로 이어진다. "한국에선 교복을 입나요?" "사진 같이 찍어도 돼요?" "몇 살이에요?" "무슨 일 해요?" 의대에 가고 싶다는 미나가 말한다. "크면 한국에 여행가고 싶어요."
고대도시 밖 호텔에서 지내다 성채 안 1만5000원짜리 게스트하우스로 옮겨 지낼 때다. 숙소에는 한족 주인을 도와 일하는 위구르 여인이 있는데 한번은 점심 때 연락이 왔다. "밥할 거니까 들어와요."
머나먼 서역 땅에서 내 끼니를 챙기는 사람이 있네. 그녀가 직접 면을 뽑고 쳐서 만든 위구르 집밥, 아니 집국수인 라그만(Lagman)은 뻘건 색과 달리 순하고 시원한데 얼핏 칼국수면과 비슷하지만 훨씬 쫄깃하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위구르어로 랄흐메트(고마워요), 중국어로 하오치(맛있어요)뿐.
한번은 한족 관광객이 북적대는 큰 길을 피해 무심코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찻집 골목 양편에 앉아 있던 위구르 남자 10여명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꽂힌다. 가만 보니 이 집에선 훨훨 타오르는 장작불에 차를 데워 온다. 슬금슬금 빈자리에 끼어 앉아 옆자리 노인을 힐끔거리며 차를 시켜 노인처럼 딱딱한 빵을 차에 적셔 먹는데 차와 빵값은 4위안(850원)밖에 안 한다. 어제 우연히 만난 중국 분들이 사준 차는 여기보다 50배쯤 비싸고, 요즘 발마사지는 1시간에 199위안(4만2000원)쯤 하던데 4위안이 웬 말이람! 담배 연기에 삐걱대는 의자는 불편하고, 각설탕은 딱 불량식품 같은데 그래도 여기가 좋다. 과거로 회귀한 것 같고,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1970년대 동방을 찾은 히피 여행자인 척하며 차를 사발로 들이켠다. 하루는 일면식 없는 위구르족의 화려한 결혼식 구경도 갔다. 서커스를 하듯 줄타기를 하고, 신랑과 신부를 필두로 모두가 울며 웃으며 춤을 추는데 문득 낯선 외모의 이들이 나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는 게 느껴진다.
위구르족 상류층 결혼식은 매우 화려하고 성대하게 열린다.
처음 카슈가르 공항에 내렸을 때는 택시도, 버스도 어떻게 타는지 몰랐고, 현금도 없었다.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위챗에 여권을 등록했고 체크카드를 연결했으니 버스를 탈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다. VPN을 우회하는 이심을 써도 인터넷은 종종 막힌다. 영어는 별 다섯 개 호텔에서도 안 통한다. 한마디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 같은 건 없다. 전 세계적으로 오버투어리즘이 이슈인 시대에 말이다.
결국 카슈가르는 도전하기 어려운 하드코어 여행지이지만 동시에 '숨겨진 왕국' 같은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모험을 감수한다면 그렇다. 카슈가르에 다녀온 지 3개월 후 나는 다시 카슈가르행 비행기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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