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전수조사 왜 필요한가...농민에게 들어봤더니
정부 수립 뒤 첫 전국 농지 실태 파악
농지 절반 가까이 임차…실경작자 확인 필요
반발 커지자 ‘처분 유예’서 ‘처분 제외’로 후퇴
“홍보보다 단속 앞서…조사 체계부터 다시 짜야”
17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한 논밭. /정종엽 기자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시작한 전국 농지 전수조사가 출발부터 흔들리고 있다. 누가 농지를 소유하고 실제 누가 농사짓는지 확인해 농지정책의 기초를 만들자는 조사지만, 정부가 취지를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투기 농지 정비를 앞세우면서 고령농과 임차농 불안을 키웠다. 반발이 거세지자 ‘처분 유예’에서 ‘처분 대상 제외’로 방침까지 물렸다.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서 40년째 벼농사를 짓는 김모(67) 씨는 전수조사 자체는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전수조사는 해야 한다. 실제 농지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실태를 조사해 데이터를 모으고, 그걸 가지고 앞으로 농업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작은 너무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국 171만 8644명, 경남은 19만 5731명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15세 이상 농가인구 중 농업종사기간이 있는 사람을 합산한 수치다.
이들이 농사짓는 땅의 상당 부분은 남의 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같은 해 임차농지 면적은 70만 7000㏊로 전체 경지면적 150만4615㏊의 약 47%다. 연구진은 50대 이하 농가에서 농지를 빌리려는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고, 고령농이나 은퇴를 준비하는 농가가 주로 농지를 내놓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김 씨는 실경작자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도 전수조사의 몫이라고 봤다. 그는 “구두계약으로 농지를 빌리면 실제 농사짓는 사람이 쌀 직불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며 “전수조사를 하면 그런 걸 더 많이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 ㄱ(62)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논을 빌려 농사짓는데 직불금은 토지주가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며 “임차농이 직불금을 받겠다고 하면 아예 땅을 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은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지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갈라지는 일이 늘어난 만큼 지금이야말로 이용 실태를 제대로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봤다. 실제 주변에는 토지주가 외국에 있거나 요양원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이 대신 농사짓는 땅도 있다고 전했다.
외지인이 가진 농지도 적지 않다. 올해 3월 말 농지정보시스템을 보면 전국 농지 195만 6000㏊ 가운데 55만 700㏊(28.2%)를 농지 소재지나 인접 시군구 밖에 사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경남도 18만 6000㏊ 가운데 5만 1700㏊, 27.8%가 관외거주자 소유다. 관외 소유 자체가 투기나 불법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같은지 확인해야 할 농지가 그만큼 넓다는 의미다.
필요한 조사인데…설명 없이 시작해 불안부터 키워
농민들이 왜 조사받는지 충분히 알기도 전에 ‘투기 농지 적발’과 ‘처분’ 이야기가 먼저 퍼졌다.
아들 명의 농지에서 연농사를 짓는 조모(65) 씨는 “전수조사가 뭔지도, 왜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나이 많은 사람들은 조사원이 와서 농사를 직접 짓느냐, 다른 사람에게 맡겼느냐고 물으면 겁부터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먼저 농민들에게 왜 조사하는지 설명하고 시작했어야 한다”고 했다.
고령농에게 농기계 작업을 맡기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트랙터나 콤바인을 직접 갖추기 어려워 모내기나 수확을 다른 농민에게 맡겼다고 해서 곧바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조 씨는 이런 경작 현실을 구분하지 않은 채 자경 여부부터 따지는 조사 방식이 불안을 키웠다고 봤다.
그동안 농지이용실태조사는 연평균 23만㏊, 전체 농지의 17% 수준에 그쳤다.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이력자나 관외거주자 소유 농지 등 투기 고위험군 중심이어서 실제 경작·임대·휴경 실태를 전국 단위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올해 5월 행정정보와 항공사진 등을 활용한 기본조사를 시작했다. 이 가운데 불법 임대차·무단휴경·불법전용·소유 제한 위반 등이 의심되는 농지는 284만 필지, 전체의 27%로 분류됐다. 다만 현장 확인 전 단계인 만큼 모두 불법이나 투기 농지로 볼 수는 없다.
김순재 전 조합장은 조사에 앞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왜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리고 시작해야 했는데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했다”고 말했다.
정부 방침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위반 농지를 일정 기간 정비하거나 농지은행에 맡기면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했다. 농민 반발이 이어지자 최근에는 명백한 투기가 아닌 관행적 임대, 상속농지, 영농이 어려운 농지 등은 아예 처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특별조치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비하면 처분을 미뤄준다’에서 ‘투기가 아니면 처분하지 않는다’로 물러선 셈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정부가 조사 목적과 추진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여론에 따라 대책을 덧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사를 할 수 있는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니까 반발이 나오고, 임시방편 대책만 내놓고 있다”며 “이 조사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불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처분 대상자를 찾는 것보다 농지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다음 실경작자와 임차농을 보호할 법·제도를 만들고, 명백한 투기 농지를 따로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첫 번째는 현황 파악이고 두 번째는 실경작자, 임차농을 보호할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현황 파악”이라며 “고의적인 투기는 당연히 조사해 처분해야 하지만 앞의 두 가지가 조사 설계와 실행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이용한 사례도 적발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업법인 실태조사에서는 2022~2025년 농업법인의 사업범위 위반 2374건 가운데 부동산업 금지 위반이 279건이었다. 농업법인 명의로 농지를 산 뒤 지분을 쪼개 되파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적발 뒤 법원에 해산을 청구할지가 현재 지자체장 재량이라는 점이다.
“전수조사 탓에 땅값 떨어졌다” 실거래 흐름은 달라
정부의 설명 부족은 농지가격 하락과 거래 위축까지 전수조사 탓으로 돌리는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 씨는 “농민들은 전수조사를 하면서 농짓값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최근에는 농지를 내놔도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경남 전·답 실거래가는 뚜렷한 급락 흐름을 보이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의 올해 1~9월 경남 ‘전’과 ‘답’ 거래를 보면 농촌지역에 가까운 면 지역 평당 실거래가 중윗값은 1~4월 11만 5000원에서 전수조사가 시작된 5~9월 12만 6000원으로 높아졌다. 8월은 13만 5000원, 9월은 12만 원이었다.
매달 거래되는 농지 위치와 조건이 다른 만큼 이 수치만으로 전수조사가 가격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조사 이후 경남 농촌지역 전·답 가격이 전반적으로 급락했다는 흐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 전 조합장도 농지가격 하락과 거래 위축은 이미 전수조사 이전부터 진행됐다고 봤다. 지역 인구가 줄면서 토지 수요가 감소했고,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면 농지가격은 4~5년 전부터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격이 내려가고 거래가 줄어든 것은 전수조사 전에 이미 진행됐다”고 말했다.
장기 거래량도 비슷한 흐름이다. 농본이 국토교통부 실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논 거래는 2021년 3월 2만4752건에서 올해 9월 4256건으로 82% 줄었다. 같은 기간 밭은 65% 감소했다. 농지가 아닌 대지는 77%, 임야도 82% 줄었다.
하 대표는 “농지전수조사가 거래 감소의 원인이라면 농지가 아닌 대지와 임야 거래까지 줄어든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 등 토지시장 전체 흐름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는 ‘처분 명단’ 아닌 농지정책 기초자료로
전수조사 결과를 어디에 쓸지도 중요하다. 지난해 경남 청년농이 신청한 공공임대농지는 431㏊였지만 실제 공급은 266㏊에 그쳤다. 농사지을 사람은 땅을 기다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누가 실제 경작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농지가 있는 셈이다.
하 대표는 임대할 수 있는 농지를 찾아 농지은행 등을 통해 청년농과 연결하고, 실제 경작자를 보호하는 데 조사 결과를 활용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농지를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 실제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에게 임대차 형태로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모 씨도 농지은행을 통한 임대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지금 농촌에 아무도 안 오고 내 자식도 농사지으려 하지 않는데, 농사를 한번 지어보겠다는 사람은 농어촌공사를 통해 농지를 싸게 임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조사 때문에 기존 임차농이 오히려 농지를 잃는 일도 나타났다. 김 씨는 “우리 마을에도 다른 사람이 농사짓던 땅을 전수조사한다고 하니 토지주가 ‘내가 직접 짓겠다’며 가져간 경우가 있다”며 “규모화해서 농사짓던 사람은 그런 필지가 빠질 때마다 농사 규모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이런 피해를 막으려면 조사 체계부터 다시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앙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책임을 맡고,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이나 부단체장이 조사 과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실제 농지 사정을 아는 이장과 주민이 참여해야 행정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재지주 농지와 관행적 임대차, 상속농지의 실제 경작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봤다.
상속이나 고령화 때문에 생긴 임대차는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임차농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세제상 불이익을 걱정해 계약서를 쓰지 않는 관행도 함께 손볼 과제로 꼽았다.
하 대표는 “지금이라도 조사 체계와 조사 추진 체계를 다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78년 만의 농지 전수조사는 처분할 농지를 많이 찾아내는 데서 끝날 일이 아니다. 누가 농지를 갖고 있고 실제 누가 농사짓는지부터 정확하게 확인해야 직불금을 실경작자에게 돌리고, 임차농을 보호하고, 농지가 필요한 청년농에게 땅을 연결할 수 있다. 처음부터 정부가 설명해야 했을 것도 바로 이 조사 목적이었다.
/정종엽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