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현 서울대 경영대 교수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중계 화면 속 광고판에서 한 물류회사의 브랜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오네(O-NE)에서 배송됩니다’라는 문자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B2B 중심의 물류회사는 일반 소비자에게 광고하는 걸까.
170년 전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x)는 원래 역마차로 현금과 화물을 수송하던 물류회사였다. 오늘날 ‘신용의 대명사’가 된 결정적 계기는 1857년 금융 공황 때다. 수많은 경쟁사가 배달을 포기하거나 파산하는 상황에서 Amex는 약속한 모든 배송을 끝까지 이행했다. 물류회사가 금융회사가 된 것은 사업 다각화 때문만이 아니다. 신뢰를 반복적으로 증명한 결과로 브랜드 자산을 쌓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이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됐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출고가 1년씩 밀리고, 물류 대란으로 항구에 컨테이너가 쌓이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며 소비자들은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존재를 실감했다. 동시에 플랫폼은 넘쳐나고 상품은 비슷해졌다. 경쟁의 마지막 전선이 배송으로 내려온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자동화와 인공지능(AI)으로 공급망의 모든 단계가 디지털화되고 있지만, 소비자와의 마지막 접점, 문 앞에 놓이는 택배 상자는 여전히 아날로그다. 소비자는 그 마지막 순간에 브랜드를 기억한다.
이 직관을 뒷받침하는 2021년 연구가 있다. 2017년 중국의 물류사인 SF익스프레스와 알리바바 간 갈등으로 42시간 동안 SF의 배송 서비스가 알리바바에서 중단됐다. 이 짧은 단절이 플랫폼 내 판매를 14% 이상 급감시켰고, 소비자들은 이탈했다. 이제 소비자는 ‘무엇을 사는가’만큼 ‘어떻게 받는가’로 구매를 결정하고 있다.
B2B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이름을 각인시키는 ‘성분 브랜딩(Ingredient Branding)’ 전략은 물류회사만 쓰는 게 아니다. 인텔은 1991년부터 ‘Intel Inside’ 캠페인을 소비자에게 직접 했고, 소비자들은 PC를 살 때 “인텔 들어갔어요?”라고 묻기 시작했다. 이는 제조사들의 구매 결정을 바꿔놓았다. 계약 대상은 기업이지만 신뢰를 쌓는 대상은 소비자다. 소비자의 선호가 쌓이면, 그것이 B2B 협상 테이블로 들어온다. 소비자를 설득한 기업이 결국 기업 고객도 설득한다. 물류회사가 야구장 광고판을 사는 이유다. 오늘 문 앞에 놓이는 택배 상자가 내일의 협상 테이블을 만든다. 누가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가. 그것이 새로운 경쟁 우위의 질문이 되고 있다.
임재현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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