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시민들. 이날 장례식은 미군에 의해 격침된 호위함 승조원들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고위 인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열렸다. photo 뉴시스·AP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이 3월 20일 현재 끝을 모르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처음에는 스마트한 공중 폭격 몇 번이면 이란이 꼬리를 내릴 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을 비롯 군사·통신·석유 시설을 맹폭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주고는 있다. 하지만 이란의 반격이 만만찮다. 미사일과 드론의 90%를 소진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어디에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금도 이동발사대 등을 통해 값싼 드론을 대량으로 먼저 밀어넣고 뒤를 이어 미사일로 타격하는 '섞어 쏘기'를 하면서 상대를 교란하고 있다. 이란은 인근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도 본격적으로 때리면서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유엔 112개국 협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도 쏘고 있다. 해군 50척이 파괴되었다고는 하지만, 호르무즈해협을 인질로 삼아 "전쟁을 끝내는 건 우리"라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내심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은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다. 지상군을 투입하여 결정적 타격을 입히지 않는 한 이란에 항복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설혹 조만간 물밑협상을 거쳐 미국과 이란이 전격적 휴전이나 종전에 합의할지는 몰라도,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인 이란이 잘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란 특유의 '폼생폼사' 정신 때문이다. 중동국가 지도자들은 대체로 '뻥'이 심하며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폼생폼사' 성향이 강하지만, 이란은 더욱 두드러진다. "중동의 군사·경제 인프라를 완전 파괴해 버리겠다"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다" 식의 강경 메시지를 남발한다. 이란 지도부에서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이란의 적들은 '이란이 무조건 항복할 것이라는 꿈'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역사적으로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후예라는 점,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한 신정체제(神政體制)라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흔히 약소국에서 볼 수 있는 저항정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란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후 페르시아가 셀주크투르크 등에 패배한 적은 있어도 비굴하게 항복한 적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큰 사탄 미국'이나 '작은 사탄 이스라엘'이 괴롭히지만 이슬람의 메시아인 마흐디의 등장을 준비하고 있는 시아파 무슬림의 정신과 영혼까지 훼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란은 알리 라리자니 안보 수장, 에스마일 하티브 정보부 장관 등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분위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뇌부를 제거하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이란에서는 죽은 자를 '순교자'로 모시고 곧장 다른 후임자를 내세우는 등 의외로 견고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란은 권위주의형 독재국가다. 만일 민주주의 국가들끼리 전쟁을 한다면 수뇌부와 국민 다수가 죽고 경제 시설이 파괴되면 싸움을 중단할 가능성이 많지만, 독재국가 리더들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이 지속되어 피해가 늘어나도 이란 수뇌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유다.
지난 3월 18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이란 전쟁 종식 촉구 행사에서 발언하는 프라밀라 자야팔 미 하원의원. photo 뉴시스·AP
이란, 버티면 중동에서 패권 행사
둘째, 이란 입장에서는 돌아가는 판세를 보니 조금만 더 버티면 시아파 맹주(盟主)로서 중동에서 확실한 패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매일 20억~30억달러의 전비(戰費)를 쓰는 데다 물가와 유가 급등도 부담이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어 자칫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하원에서 3석, 상원에서 4석이 뒤집히면 다수당이 바뀌게 되므로 마음이 조급하다. 그래서 속으론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다.
이란은 이를 잘 알고 있다. 휴전협정을 맺더라도 이란은 반드시 배상금까지 요구하면서 최대한의 명분과 이익을 트럼프로부터 챙기려 한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지난 3월 16일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 능력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란은 어떻게 아직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나'라는 기사에서 "이란이 주변국을 소진시키고, 위협을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 '비대칭 전쟁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서방국가들의 분열을 유도하고 있어 이란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꽃패를 쥔 형태가 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선박 외에는 통과시켜 주겠다고 언급하면서, 서방 측에다 심각한 갈라치기를 유도하고 있다.
이란은 또 이번 기회에 미국이나 이스라엘 못지않게 얄미웠던 아랍 수니파 국가들을 건드리면서 패권주의 욕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란은 아리안 민족으로 시아파가 주축인데, 평소에도 수니파가 많은 아랍 민족을 상대적으로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오만,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등의 항구, 석유시설, 미군기지에 2000기 이상의 드론과 1000발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바레인을 향해서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공격, 물이 귀한 중동에서 '식수원 파괴'라는 공포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중동 우호국 중 일부는 이슬람 세계의 최대 적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었고 심지어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는 데 자국 영토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다"면서 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대다수 아랍 국가들은 부글부글하면서도 참는 편이다. 일단 미국에 대응을 맡긴다는 입장이다. 마치 자신을 괴롭히는 학교 일진에게 일시적 보복을 해봤자 더욱 지능적이고 심각하게 괴롭힐 것을 우려해 꾹 참는 일반 학생의 모습이다. 이란은 "미국만 믿으면 이런 꼴을 계속 볼 거야" "중동에서 패권 국가는 나야"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다. 하지만 걸프 국가들로서는 자국의 에너지 시설이 계속 훼손당한다면 직접 전투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곧 대대적인 중동전쟁,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의 우려까지도 낳게 만든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오늘날 중동 갈등은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이란과 이를 저지하려는 걸프 국가들의 대응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면서 "그간 대외 협력을 확대해 온 사우디와 UAE 등은 비록 이번에 인프라·항만·금융 중심지가 이란에 공격당했지만 외교적으로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최근 유엔 안보리는 이란을 규탄하는 결의안 제2817호를 13개국 찬성(러시아·중국 기권)으로 채택했으며, 결의안 발의국인 바레인은 이 과정에서 135개국의 찬성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 외교적 위상을 세우려는 걸프 국가들의 노력과 이란의 패권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부딪칠 전망이다.
트럼프의 발등 찍기
셋째, 미국은 무차별 관세 부과로 동맹의 신뢰를 잃고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반면, 이란은 여전히 '저항의 축'이라는 탄탄한 동맹 네트워크를 자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는 이란으로부터 동맹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호르무즈해협에 함대를 보내라"면서 영국·중국·일본·한국 등 7개국에 요청했으나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러자 "내 말 듣지 않으면 기억해 두겠다"라며 특유의 협박 전술을 구사했으나, 유럽이든 아시아든 부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전투병을 보내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해야 할 처지여서 서로 눈치작전을 펴고 있다. 어쨌든 이는 트럼프가 그동안 동맹국들을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외교가에서 이번 전쟁은 미국이 동맹국들과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시작한 군사작전이라는 점을 협력 부족의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평소에도 트럼프의 막무가내 관세 부과로 감정적 골이 깊어진 상황인데, 전쟁마저 멋대로 시작하더니 이제 상황이 곤란해지니 되레 동맹국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동맹국들은 도대체 전쟁의 목표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제거였는지, 특정 지역의 핵시설 타격인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체인지 애매모호한 것이 불안하다. 미국이 오직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은 모습도 다른 나라들의 불만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우려는 아랑곳없이 계속 '공격 앞으로'만 외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끝까지 공격해 이란을 불구 상태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이란 내 1700개 이상의 군사 자산을 타격했다. 그래서 요격미사일이 부족해졌는데도 4월의 유월절 명절까지 이란의 국방산업 인프라를 뿌리 뽑겠다고 나서고 있어 미국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백악관 데이비드 색스 AI·암호화폐 차르는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이 소진되는 등 방공망이 뚫리고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미국 관리들은 뉴욕타임스에 "얼마 전 네타냐후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중부사령관의 조언을 무시하고 이란 석유저장소 공격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이스라엘 채널14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기독교 시온주의자답게 자신의 '무한대 이스라엘 사랑'을 표현했다.
반면 이란은 탄탄한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다. 중동에서는 대리세력(proxy)인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반군,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인 이라크이슬람저항(IRI) 등과 군사 동맹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 이란으로부터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받아온 이들은 최근 경제제재를 받는 이란의 돈줄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고는 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이란으로 집중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포화를 분산시키는 역할부터 충실히 하고 있다. 그동안 궤멸된 줄 알았던 헤즈볼라는 하루 100발의 발사체를 쏘아대고 이스라엘과 지상전을 벌이면서 이란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하마스의 경우 "걸프 국가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이란에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론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하마스는 미국과 시온주의(이스라엘)의 무질서에 맞서 당신의 현명한 지도하에 전력을 다해 서있습니다"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이스라엘 공영방송 KAN이 보도했다. 번개 같은 게릴라식 공격이 특징인 후티반군도 전쟁이 오래갈 경우 참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란은 대외적으로 러시아·중국·북한과 든든한 동맹을 맺고 있으며 이들은 미국의 눈치 때문에 노골적인 이란 지원은 삼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란을 돕고 있다. 러시아가 부상당한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데려가 치료하고 있다는 쿠웨이트 일간지 보도가 있었고,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가 24시간 내내 광학·레이더 영상을 제공하는 첨단 공중 감시망을 통해 이란에 군함·항공기를 포함한 미군시설 위치를 넘겨줬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또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매체로 알려진 타스님통신과 62개의 위장 소셜미디어를 통해 최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망설을 조직적으로 유포했는데,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 매체들까지 받아서 확산시키기도 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은 호르무즈해협을 유유히 통과한다. 유일신 알라를 믿는다는 이란이 무신론을 축으로 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 나라들과 영혼의 동맹을 맺는 모습이 우습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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