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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포탄보다 좌표 체계 무너뜨린다"… 한화에어로·LS전선·HPE·카스퍼스키...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원자력 발전 사업자들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기 시작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결국 미래 안보 경쟁의 핵심은 얼마나 강한 무기를 갖고 있느냐보다,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포탄보다 좌표 체계 무너뜨린다"… 한화에어로·LS전선·HPE·카스퍼스키...

-에스토니아 천무 추가 도입부터 부유식 해저케이블·자율 복구 네트워크까지… 전장 중심 바뀌었다

-NATO는 ‘화력’보다 생존성을 보기 시작했다… 좌표·전력·통신 유지하는 기업들이 새 전략자산으로

천무 다연장로켓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군 당국이 가장 뼈아프게 확인한 것은 현대전에서 먼저 무너지는 것이 포탄이나 전차가 아니라 ‘좌표 체계’라는 사실이었다. GPS 교란과 스푸핑이 시작되고 통신망과 전력망까지 흔들리자 수천억원짜리 첨단 무기체계도 순식간에 방향을 잃었다. 미국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이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단순히 사거리가 길어서가 아니었다. 위성정보와 좌표체계, 데이터링크, 실시간 표적정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끊기지 않고 유지됐기 때문이다.

11일 공개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의 에스토니아 천무 추가 계약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에스토니아는 지난해 12월 천무 6문 도입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불과 5개월 만에 추가로 3문을 더 들여오기로 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발사대 증강처럼 보이지만, 유럽 안보 당국이 실제로 주목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유사시 NATO 동부전선에서 누가 더 빠르게 표적 좌표를 공유하고, 전자전 상황에서도 지휘·통신 네트워크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다.

천무의 강점은 사거리가 길다는 데만 있지 않다. 천무에 적용되는 CGR-080·CTM 계열 유도탄은 관성항법장치(INS)와 위성항법체계(GNSS)를 함께 활용해 표적 오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문제는 실제 전쟁 상황에서는 위성항법 신호 교란이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온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미 발트해와 칼리닌그라드 인근에서 GPS 재밍과 스푸핑을 반복해 왔고, 북유럽 민간 항공기와 선박들까지 위치정보 오류를 겪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전에서 살아남는 다연장로켓 체계는 단순히 발사대 숫자가 많은 무기가 아니다. 전자전 상황에서도 좌표 정확도를 유지하고, 교란 환경 속에서 사격 체계를 계속 운용할 수 있는 체계가 살아남는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이 장사정 타격체계를 평가할 때 가장 민감하게 들여다보는 부분도 바로 여기다. 단순 화력이나 사거리 경쟁이 아니라, 전자전(ECM)과 전자방호(ECCM) 환경 속에서도 얼마나 안정적으로 표적 정보를 유지하고 연속 사격 능력을 보장할 수 있느냐다.

에스토니아가 천무를 빠르게 추가 도입한 배경도 결국 여기에 있다. 발트 3국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유사시 미국과 NATO 증원 전력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방어선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장거리 정밀타격 체계는 단순한 공격 무기가 아니라, 전선 붕괴를 늦추고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 자산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날 나온

LS전선

의 움직임이다. LS전선과 한국전력기술은 부유식 해상풍력 협력에 나섰다. 겉으로는 친환경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업계가 더 주목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AI 시대의 전쟁은 결국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초거대 AI 모델과 군용 ISR(정보·감시·정찰) 체계, 실시간 위성영상 분석, 무인기 편대 운용, 대규모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까지 모두 전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원자력 발전 사업자들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기 시작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결국 미래 안보 경쟁의 핵심은 얼마나 강한 무기를 갖고 있느냐보다,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부유식 해상풍력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일반 해저케이블은 해저면에 고정되지만, 부유식 해상풍력용 케이블은 구조물 자체가 바다 위에서 계속 움직인다. 파도와 조류, 부유체 진동이 반복되면서 케이블에는 지속적으로 장력이 걸린다. 업계가 가장 까다롭게 보는 부분도 단순 절연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는 미세 진동으로 구리 도체 내부에 피로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장기간 운용 과정에서 케이블 수명 자체가 급격히 짧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내믹 케이블은 전선을 만드는 수준의 기술로 접근하기 어렵다. 케이블 내부에는 기계공학과 유체역학, 고분자 절연 설계, 열관리, 피로해석 기술이 동시에 들어간다. 바다 위에서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장력과 진동을 견디면서도 초고압 전력을 안정적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초고압급 다이내믹 케이블을 실제 상용 단계까지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이 유럽 일부 업체와 LS전선 정도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최근 유럽이 해저케이블을 사실상 군사 인프라 수준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발트해 해저 통신선 절단 사건 이후 NATO 내부에서는 해저케이블을 ‘21세기 송유관’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졌다. 해저케이블 하나만 끊겨도 데이터센터와 금융망, 군 통신망, 전력 인프라까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카스퍼스키와 인터폴

의 AFCON 사이버 보안 협력 역시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카스퍼스키는 이번 협력 과정에서 모로코 관련 유출 자격증명 211만건 이상을 식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가 더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는 이제 사실상 하나의 ‘임시 국가 운영체제’에 가깝다. 티켓과 결제, 출입 통제, 교통망, 통신, 위치정보, 클라우드 인증 체계가 동시에 연결된다. 공격자 입장에서는 개별 서버 하나보다 훨씬 가치가 큰 목표가 되는 이유다. 실제 최근 핵티비스트 그룹과 사이버 범죄 조직들은 대규모 디도스(DDoS) 공격보다 인증정보 탈취에 더 집중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관리자 계정이나 인증 토큰만 확보하면 네트워크 전체를 눈에 띄지 않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스퍼스키가 경고한 ‘인포스틸러’는 기존 악성코드와는 결이 다르다. 업계에서는 이를 현대전의 정찰 자산에 가까운 유형으로 본다. 사용자의 브라우저 쿠키와 세션 토큰, OTP 정보까지 빼내 계정 인증 자체를 탈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크웹 시장에서는 카드번호 같은 금융정보보다 실제 로그인 가능한 ‘유효 세션(valid session)’ 거래 가치가 더 높게 형성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다중인증(MFA) 체계까지 우회할 수 있어서다.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

가 공개한 ‘셀프 드라이빙 네트워크’도 흐름은 비슷하다. 단순히 AI가 네트워크 운영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이 아니다. 핵심은 장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구조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기 전에 징후를 감지하고 스스로 복구까지 수행하는 체계에 가깝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HPE의 실시간 DFS(Dynamic Frequency Selection) 기능은 단순히 무선 채널을 바꾸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레이더 간섭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패턴을 학습해 무선 자원 자체를 다시 배치하는 방식에 가깝다. VLAN 자가복구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기업·공공기관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장애 상당수는 VLAN 설정 누락이나 DHCP 충돌 같은 L2·L3 구간 설정 오류에서 시작된다. HPE는 AI가 이런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즉시 수정하도록 설계했다. 장애 발생 이후 사람이 원인을 찾고 복구하는 기존 방식보다 대응 속도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영국 법무부

에서 헬프데스크 티켓이 약 75% 감소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운영 인력 절감 효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 행정망 자체가 장애 발생 이후 사람이 수동으로 복구하는 구조에서, 이상 징후를 먼저 감지하고 스스로 복구를 시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산업 구조 변화의 본질도 드러난다. 과거 방산기업은 무기를 만들고, 전선기업은 케이블을 생산했으며, 보안기업은 백신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 간 경계 자체가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제 단순 발사대를 수출하는 기업으로 보기 어렵다. 전자전 환경에서도 좌표 체계와 타격 능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LS전선 역시 전선을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 전력망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다루는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카스퍼스키는 사이버 보안을 넘어 디지털 신원과 인증 체계를 방어하는 역할에 가까워졌고, HPE는 네트워크가 장애 상황에서도 스스로 복구되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대전의 경쟁은 단순 화력 규모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신망과 전력망, 데이터센터, 인증 체계, 군 지휘통제망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국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전략 산업의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지금 그 변화의 최전선으로 빠르게 들어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방산과 전력, 사이버 보안, 네트워크 기업을 서로 다른 산업으로 구분해 평가했지만 최근에는 국가 회복탄력성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보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은 생산 능력만 가진 제조업체가 아니라 전쟁과 정전, 사이버 공격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국가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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