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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팔공산에서 히말라야까지…'네팔 슈바이처' 이근후 명예교수 별세

팔공산 텐트 안에서 의학책을 펼치던 청년이 있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도 산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산길은 훗날 히말라야로 이어졌고,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 그의 의술을 네팔 오지로 이끌었다.

팔공산에서 히말라야까지…'네팔 슈바이처' 이근후 명예교수 별세

대구 출생·경북대 의대 졸업…팔공산 누비던 의대생서 정신과 의사로

개방병동·사이코드라마 선구자…히말라야 인연 네팔 의료봉사로 이어져

▲ 이근후 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 유족 제공

팔공산 텐트 안에서 의학책을 펼치던 청년이 있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도 산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산길은 훗날 히말라야로 이어졌고,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 그의 의술을 네팔 오지로 이끌었다.

‘네팔 슈바이처’로 불린 이근후 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오후 10시10분께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고와 경북대 의대를 졸업했다. 대학생이던 1957년 김기문 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과 함께 국내 최초의 학생 산악단체인 경북학생산악연맹을 창립했다.

1959년에는 팔공산에서 국내 첫 등산대회인 ‘제1회 전국 60㎞ 극복등행대회’를 개최했다. 그는 생전 “팔공산 텐트 안에서 의대 시험공부를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의학과 산. 젊은 날 함께 걸었던 두 길은 훗날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1973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70년대 국내 최초로 개방병동을 운영했다. 1974년에는 극작가 오영진에게 국내 최초로 사이코드라마 치료법을 제안해 시도했다. 한국정신치료학회 설립에도 앞장섰다.

병원의 문을 열었던 의사는 다시 산을 넘어갔다.

1982년 한국산악회 마칼루 학술원정대 학술조사요원으로 네팔을 찾았다. 원정대와 떨어져 셰르파 한 명과 5개월 동안 해발 4000~5000m의 히말라야를 오가며 네팔 민속을 조사했다.

이때 만난 네팔 사람들의 정신적·문화적 힘에 매료된 경험은 의료봉사로 이어졌다. 1989년 이화네팔의료봉사단을 만들어 2001년 퇴임할 때까지 매년 겨울방학이면 네팔 오지의 환자들을 돌봤다. 퇴직 후에도 네팔 봉사캠프를 조직해 활동을 이어갔으며 네팔 돌카 지역에는 병원도 세웠다.

팔공산을 누비던 대구의 의대생에게 산은 그렇게 히말라야를 거쳐 사람에게로 이어지는 길이 됐다.

고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여러 지병을 앓고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뒤에도 3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2011년에는 고려사이버대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졸업했다.

대표작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40만권 이상 판매됐다. 최근에는 그의 저서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큰아들인 천문학자 이명현 씨가 엮은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를 마지막 작품으로 펴냈다.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도 그의 삶과 닮아 있었다.

지난 5월 혼인신고를 한 외손부 이단비 씨는 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유쾌하고 즐겁게 살다 가셨다”고 전했다. 이어 자신들 부부에게도 생전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라”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팔공산에 올랐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병동의 문을 열었다. 다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의 환자들을 찾아갔고 아흔을 넘어서도 배우고 글을 썼다.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라.”

그가 생전 외손부 부부에게 하곤 했다는 이 말은 그렇게 91년의 삶과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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