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섭 전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대가대 행정학과 특임교수
우리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 모두가 주인이며, 또한 주인을 위해 일하는 대리인이기도 하다.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세분화됨에 따라 권리와 의무 관계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대사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일상의 세분화된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거나 위탁하여 처리할 수밖에 없다.
조직에서 주인-대리인이론이 있다.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를 주인을 위해 대리인이 대신 일을 처리해 주는 계약관계로 보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도 비슷하다. 과거에는 통치자의 권한은 하늘이 준다는 왕권신수설을 바탕으로 그 권한이 세습됐다. 하지만 18C 사회계약론은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자기의 권리와 자유의 일부를 통치자에게 양도하고 통치자로부터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는 계약관계로 본다. 주인이 국민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국민과 정부, 유권자와 의원 간의 관계도 주인과 대리인 관계로 볼 수 있다. 주인인 국민을 위해 정부와 공무원이 존재한다. 하지만 위임받은 권한을 주인인 국민의 이익이 아닌, 정치인, 공무원 등의 대리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되는 대리 손실(agency loss)의 문제가 따른다.
실례로 행정기관이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허가나 규제 등으로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독점적 상황이 조성돼 이익집단들은 기술개발보다는 정부에 로비하는 비생산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지대추구(rent seeking) 현상이 생긴다.
이러한 지대추구로 공무원이 이익집단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주장에 끌려가게 되는 포획(capture) 현상이 나타난다. 주인의 이익은 자연히 도외시된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기업, 노동자단체 등 여러 분야에서도 대리인이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례로 노동조합 간부로 선출되면 그때부터 조합원들의 이익보다도 자신의 간부 직위를 유지하는데 역점을 둔다. 당초 목표가 바뀌는 머튼(R. Merton)이 말하는 목표의 전환(goal displacement)이다.
우리 사회에는 500여 개 직업군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일하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당초 일을 맡긴 주인의 이익보다 대리인이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1997년 IMF 금융위기 때 조직이 도산 위기에 처해 있을 때조차도 소속 임직원의 퇴직금을 먼저 챙기려 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막아야 한다.
고객만족경영에서 고객을 주인으로 강조한다. 고객은 외부고객뿐만 아니라, 내부고객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포함된다. 소비자, 직원, 주주, 협력사, 지역사회 등의 다양한 이익이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고도로 분화된 복잡한 대규모 조직에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대리인인지 그 역할이 불분명하거나 구분 자체가 힘든 경우도 많다.
지금 삼성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2026년 1사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의 15%를 직원의 성과급으로 요구한다. 과연 고객이 직원뿐인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만이 진정한 조직의 주인인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현대사회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이러한 환경에서 조직이 생존하고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요구된다. 구성원의 주인정신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공식적으로 맡은 역할 외에 보상 없이도 자발적으로 조직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이타적 행동인 조직시민행동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되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수록 주인과 대리인의 계약관계가 바르게 정립돼야 한다. 주인이 믿고 대리인에게 맡길 수 있도록 정직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더 개방적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대리인으로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에 대해 한 번쯤 깊이 되새겨 봐야 한다.
김부섭 전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대가대 행정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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