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최근에 네이버를 검색하다 '토화젓'이 나오길래 내용을 자세히 보니 민물새우로 담근 젓갈이라고 나온다.
사실 민물새우로 담근 젓갈은 '토화젓(土花 )'이 아니라 '토하젓(土蝦 )'이다.
여기서 토화(土花)는 민물새우가 아니라 '토굴'이라고도 불리는 '미네굴'이다.
토화(土花)는 일반 굴과 비슷하지만 사는 곳이 다르다. 주로 개펄에 살며, 명칭 역시 떡굴, 벚굴, 갓굴, 갯굴, 강굴 등 다양하게 불린다.
토화(土花)로 불리는 '미네굴'에 대해 조선 효종 때 실학자였던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지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제4권 하 경상도(慶尙道)편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는 물론 진주목(晉州牧)과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토산(土産)에 '미네굴인 토화(土花)'가 나오고,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강원도를 제외한 7도의 토산물로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 1760∼1815년)의 '이옥전집(李鈺全集)'에 석화(石花)와 토화(土花, 미네굴)가 나오는데, "附於土曰 '土花', 附於石曰 '石花'(부어토왈, '토화' 부어석왈, '석화') 개펄에 사는 것을 토화(土花, 미네굴)라 하고 바위에 붙어사는 것을 석화(石花)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개펄 속에서 사는 굴이 바로 토화(土花)인 것이다. 개펄에서 자라는 굴은 물이 들고 날 때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성장이 느려 알이 작을 수밖에 없다. 알이 작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속이 단단하고 알 옆에 달린 날개 부분의 털은 크고 긴데, 이것을 명털 즉 물날개라 하며 이 때문에 양념이 잘 스며든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 초기 이미 알이 작은 토화(土花)로 '토화젓'을 담았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 11년(1429년) 7월 10일 자 임금이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서토(瑞 )의 출현을 하례(賀禮)하는 표문(表文)과 전문(箋文)에 배례(拜禮)하였다. 진헌사(進獻使)인 인순부 윤(仁順府尹) 권도(權蹈)가 아울러 가지고 떠났는데, 표문의 내용에 '토화젓'이 나온다.
조선 후기 1760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수록한 정무 일지인 '일성록(日省錄)' 순조 20년(1820) 5월 5일 자에는 '웅천현 안골포(安骨浦)와 신문리(新門里)에서 물 색깔이 붉고 탁하게 변하며 독기가 가득 퍼졌는데, 두 진(鎭)의 남녀 백성 12명이 미네굴(土花) 등속을 따 먹고 사망하였다'고 나온다.
그 정도로 당시 진주, 창원, 김해, 웅천에 '미네굴'을 많이 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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