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혜연 충북교육연구정보원 총무팀장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올해 여름은 얼마나 더웠던지 이제는 30도가 조금 넘는 날씨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책하곤 한다. 매일 매일 달라지는 풍경과 오솔길에 피어난 보라색 맥문동 꽃을 보며 여름을 느끼고, 밤이 되면 들려오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곧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한낮에는 아직 더우니 시원한 곳을 찾아야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 영화관에 가서 재미있다고 입소문 난 영화를 보면 더위도 해결되고, 재미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리스 신화에는 수많은 신들과 영웅이 나오는데, 그 중 한명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가는 동안의 이야기로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하는 영화관 나들이가 너무 기대되었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10년 동안 매우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을 잡아먹는 양치기 외눈박이 괴물도 만나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도 만난다. 사람을 동물로 만드는 마녀도 만나고, 망각의 꽃을 먹이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던 칼립소도 만난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가끔씩 생각나는 기억이 힘들어 망각의 꽃에 의지하며 기억을 잃고 아무런 의지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었다. ‘두렵고 아픈 기억을 잊고(피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의지 없이 살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다른 사람의 의지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트로이 전쟁으로 1000척이 넘는 배를 띄웠던 헬레네의 미모에 대해 말들이 많았지만, 우리가 글로 배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전쟁 후 다시 돌아온 헬레네가 남편 메넬라오스 옆에서 멸시받는 것을 보고, 그 시대의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20년 간 한 나라를 건사했지만, 남편의 생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구혼자들을 대접해야 했던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도 삶의 업적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었던 키르케도 사실은 사람을 동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있을 때 사회적 약자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잔혹한 본성을 형상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주변에는 신화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다. 운동용품으로 유명한 ‘나이키’가 승리의 여신인 ‘니케’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중 하나인 ‘트로이목마’는 어떤가? 정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위장해 컴퓨터에 침투한 뒤 시스템에 백도어를 생성하여 정보를 유출하거나 원격 조정하는 악성소프트웨어로 신화 속 ‘트로이 목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말이다. 배를 타고 가는 선원들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유혹하여 난파시키는 ‘세이렌’은 스타벅스의 로고로 이미 유명하고, 생물학에서는 하나의 생물체에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세포나 조직이 섞여 있는 것을 ‘키메라’라고 부르는데,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인 괴물 ‘키마이라’에서 유래했다. 또 코로나 최악의 변이였던 ‘켄타우로스’도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반신은 말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신화 속 인물이었음을 생각하면 신화적 요소가 우리 일상 곳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교육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좌 중 하나가 <인문 오딧세이>인데 지혜를 향해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선정하여 끊임없이 배움을 향해 함께 나가는 느낌이다.
그동안 더위를 핑계로 미뤄두었던 책읽기 좋은 계절이 왔다. 삶이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간결하게,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신화 속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혜연 충북교육연구정보원 총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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