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談
홍지혜 (재)청주복지재단 경영지원팀 과장
나치 수용소의 참혹한 비극 속에서 인간 존엄의 본질을 탐구했던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가혹하고 비극적인 환경일지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인간 존엄의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이 선언은 오늘날 복지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한 사람의 존엄을 제도적으로 지켜내는 일, 그것이 현대 사회복지의 가장 근본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복지 서비스는 보편적 인권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 거버넌스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와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례 없이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권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인권을 기관 운영 중심에 놓는 이 개념은 더 이상 선택적인 윤리 지침이 아니라, 기관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에 직결되는 핵심 원칙이 되었다. 202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업무 추진 방향 역시 이러한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인권의 개념을 전통적 자유권 영역에 가두지 않고 기후 위기 대응, 디지털 정보인권 보장, 그리고 돌봄 공공성 강화라는 현대적 사회권 영역으로까지 전면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권의 지평이 ‘보이지 않는 기술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사실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눈부신 효율성 뒤에는 알고리즘의 차별, 정보 소외, 그리고 정보인권 침해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숨어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 장애인·고령층·저소득층·농어민 등 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77.9%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71.8%로 가장 낮아, 이는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확산될수록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의 권리가 그만큼 더 빠르게 침식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공지능 서비스를 도입하고 디지털 전환을 추진할 때는 기술 효율만을 앞세우지 않고 권리 침해 여부를 사전에 점검하는 실질적 감독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기관에서는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여 인공지능의 편향성, 개인정보 유출 등 실제적·잠재적 인권 리스크를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인권영향평가는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 존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장치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거시적 가치는 명확하다. 복지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게 시혜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인권을 당연하게 보장하는 숭고한 책무여야 한다. 복지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인권경영은 거창한 구호나 세련된 문서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 현장에서 마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실천이자 인권영향평가와 같은 체계적인 점검 과정이다.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의 극한 속에서도 끝내 빼앗기지 않았다고 선언한 그 자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존엄한 권리, 그것을 제도로 지켜내는 일이 바로 ‘존엄이 일상이 되는 보편적 인권 공동체’의 시작이다.
홍지혜 (재)청주복지재단 경영지원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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