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구사
이욱 충북대사대부고 교사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현대인이 ‘기다림’을 대하는 태도를 꼬집는다. “현대인은 속도를 개선으로, 다시 말해 ‘낭비되는 시간‘이라는 골칫거리를 제거하는 요긴한 것으로 본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횡단보도의 30초 기다림조차 견디지 못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로젠은 이 현상의 진짜 문제가 “주의력 약화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을 능력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자신의 생각과 마주하는 일. 하지만 지금 교실에서는 이 경험이 빠르게 휘발되는 듯 하다. 이번 학기 학생들과 진행하는 ‘주제탐구독서’ 수업은 학생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관련 책을 찾아 정보를 검증하며 보고서를 쓰는 수업이다. 이 과정의 본질은 지루함과 느림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정말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책을 펼쳐놓고 막막함에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진정한 탐구는 바로 그 괴롭고 더딘 시간 속에서 싹을 틔운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기획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탐구 계획서를 보면 놀랍도록 매끄럽다. ‘친환경적 해충 방제 방안‘, ’우울증의 정의와 원인‘,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효과‘ 등 훌륭하게 세분화된 구체적인 주제들이 하루 만에 제출된다. 높은 확률로 AI가 준 답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완벽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학생들은 ‘조용한 방’에 머무는 대신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위탁한다. 낭비되는 시간을 제거하는 것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며칠 동안 주제를 쥐고 끙끙대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처럼 보일 테니까. 그렇게 학생들은 1초 만에 정답을 얻는 대신, 자신의 생각과 마주할 기회를 잃는다.
최근 김애란 작가는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과정의 생략’이 가져오는 상실을 짚어냈다. 작가로서 문장을 이어나가며 겪는 ‘전전긍긍’과 ‘자문자답’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글쓰기의 근육이 길러지는데, AI는 그 필수적인 고통을 지나치게 단축해버린다는 것이다. AI가 자료 조사의 도구로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작가의 삶과 혼이 담긴 문학적 감동까지 대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탐구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헤매는 ‘전전긍긍’의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근육 없는 지식만이 남는다.
김 작가는 인간에게는 있지만 AI에게는 없는 결정적인 특징으로 ‘망설임’을 꼽는 통찰을 보여준다. 타인의 아픔을 마주했을 때 섣불리 말을 뱉지 못하고 주저하는 침묵 안에는 배려와 품위가 깃들어 있다. 그녀는 그 구체적인 예로 손석희 앵커가 뉴스 브리핑에서 과거 故 노회찬 의원의 부고를 전하며 보여준 20초간의 침묵을 언급했다. 만약 AI가 그 뉴스를 진행했다면 보도 원칙과 효율성에 따라 1초의 지체도 없이 뉴스를 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 사고라고 해도 될 것 같았던 인간의 흔들림과 투박한 침묵은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동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강렬한 ‘실감’을 전해주었다. 유려한 조언보다 때로는 무거운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는 이유다.
학생의 탐구도 마찬가지다. 오랜시간 망설이며 주제를 정하지 못하는 것, 자신의 주제에 맞는 책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것. 이 한계와 결함처럼 보이는 시간들이 사실은 그 아이만의 고유한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주제를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한참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관심사를 자문자답하며 탐구의 근육을 키우는, 가장 인간적인 성장의 시간이다.
인공지능이 무엇이든 답해주는 시대에도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바로 이 머뭇거림이다. 파스칼이 말한 ‘조용한 방’에 머물며 지루함을 견뎌낼 권리, 타인의 아픔 앞에서 기꺼이 멈춰 서는 망설임의 미덕.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어쩌면 1초의 정답보다 20초의 침묵 속에 담긴 인간의 품위일지도 모른다.
이욱 충북대사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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