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이태욱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지난 7월 중순에 프로바둑계 세계 랭킹 1위인 대한민국 신진서 9단과 AI 바둑 카타고와의 세기적인 바둑 대국이 한국에서 열렸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번 시합은 총 세 차례 대국이 진행되었고 신진서 9단이 2 대 1로 카타고를 물리치고 이기면서 다시 한번 세계 랭킹 1위임을 입증하였다.
이번 세기의 대결은 단순하게 승패의 기록을 넘어, 인간과 AI 기술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주체적 사유가 우리에게 던지는 깊은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 이 세기의 대결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절대적 존재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이 요구된다. 카타고를 비롯한 바둑 AI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어 상상을 초월하는 연산 능력과 냉혹한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다. 신진서가 AI와 마주할 때 느낀 것은 단순한 압도감이 아니라,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AI를 단순한 경외의 대상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닌,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해야 할 거울로 삼았다. 이 모습은 AI와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AI라는 압도적인 도구와 지성이 인간의 영역을 잠식해 오는 시대라 할지라도, 인간은 그에 주눅 들기보다 주체적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두 번째는 '완벽함'의 환상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인간의 창조성이 돋보인다. AI의 등장은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이 수백 년간 진리라 믿었던 포석과 정석들이 AI의 분석에 의해 순식간에 '보통의 수'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는 체계나 지식 역시 언제든 시대와 기술의 발전 앞에 재정립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AI의 '완벽한 계산'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불완전함이 가진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AI는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수(정답)를 도출하지만, 신진서는 그 틀을 깨는 감정적·직관적 승부수를 던진다. 정답이 정해진 세상에서 정답을 찾는 것은 AI의 몫이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직관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모방을 통한 학습과 주체적 내면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 바둑 기사들은 AI의 등장을 계기로 바둑을 두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꾸었다. AI의 기보를 연구하고, 그들이 두는 난해한 수들을 흡수하며 인간의 기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서 우리는 AI 기술과의 공존 방식을 배운다.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이 도래했을 때, 무조건적인 거부나 맹신이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고 나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 소화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진서가 AI를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바둑 세계를 더 단단하게 구축했듯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도 외부의 강력한 혁신을 주체적으로 흡수하여 내면화하는 능력을 분명히 길러야 한다.
네 번째는 패배를 통한 성장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신진서와 카타고의 시합, 그리고 그동안 컴퓨터를 통해서 AI를 상대로 한 인간의 수많은 대국은 거의 대부분 인간의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그 패배는 좌절을 위한 패배가 아니라, 인간이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인간은 감정을 지니고 있기에 패배 앞에서 아픔을 느끼지만, 바로 그 고통과 성찰의 과정이 인간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AI는 감정이 없기에 실패로부터 괴로워하지 않지만, 인간은 실패를 통해 반성하고 창의적인 돌파구를 찾아낸다. 완벽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배우고 진화해야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며 프로기사 신진서와 AI의 대국은 바로 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장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
이번 신진서와 카타고의 만남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비관적인 종말론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첨단 AI 기술을 거울삼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가는 협력과 성찰의 장이었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완벽을 지향하는 도구와 마주할 때 비로소 발휘되는 투지와 창의성은, AI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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