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당국이 제동을 걸었더라면 위기에 빠진 조합에 조합원이 돈을 빌려주는 추가 피해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올해 초부터 아이쿱 생활협동조합의 차입금 모집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해온 사회적경제노동센터 관계자의 말이다. 문제를 알고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공정위를 향한 답답함이 묻어났다. 친환경 먹거리 매장 ‘자연드림’ 브랜드로 잘 알려진 아이쿱은 한때 국내에서 가장 큰 생협이었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 아이쿱에 자료를 요구하며 차입금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올해 4월에는 현장조사까지 벌였다. 감독당국이 사안을 파악하고 조사하는 동안에도 조합원들은 돈을 빌려주고 있었다.
공정위의 ‘검토 중’이라는 말이 1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결국 탈이 났다. 지난 8월 18일부터 일부 관계법인의 차입금 상환이 밀리기 시작했다. 현재 아이쿱 관계법인이 조합원 2300여 명에게 갚아야 할 돈은 1469억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조만간 아이쿱에 시정명령에 준하는 행정조치를 취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은 운영 절차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의사결정 절차상의 문제만 지적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차만이 아니다. 생협 규모 대비 차입금을 얼마까지 모을 수 있는지, 차입하는 법인의 경영·재무상태를 얼마나 투명하게 제공해야 하는지 등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아이쿱은 생협과 지분관계가 있는 주식회사뿐 아니라 관계가 불분명한 회사들의 차입금 모집까지 승인해주고 조합원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왔다. 이렇게 빌린 돈은 아이쿱생협연합회 재무제표상 차입금에 합산되지 않는다. 생협법상 생협 밖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2024년 말 기준 아이쿱 관계법인들이 조합원에게 빌린 차입금은 총 1582억원에 달했지만, 생협연합회 재무제표상 장단기 차입금은 총회에서 정한 최고한도 750억원보다 적은 400억원이었다. 공정위는 각 법인 차입금을 합산해 아이쿱 차입금이 750억원을 넘겼다고 해도 정관과 내부 규정에 따른 승인 절차를 충분히 거쳤다면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합원이 출자하고 1인 1표로 운영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수십 개 관계법인을 거느리고 수천억원을 조달하는 조직으로 커졌다면 안전장치도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돈을 빌리는 법인의 재무상태와 관계법인 전체의 차입 규모는 조합원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위험 신호가 뚜렷할 때 신규 모집에 제동을 걸 최소한의 장치도 필요하다. 공정위의 생협 감독 권한은 다음달 13일부터 중소벤처기업부로 넘어간다. 간판만 바뀌고 법은 그대로라면 다음 사고도 막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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