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언론인
430여년 전, 한반도의 산천은 전란의 불길에 휩싸였다.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잉여 군사력을 한반도에 투사해 소비함으로써 국내 안정을 꾀하려던 전쟁 때문이었다. 바로 1592~1598년에 걸친 임진왜란이다. 이 전쟁은 다른 이름으로 ‘도자기(陶瓷器)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조선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 기술국이었다. 순백의 절제미를 자랑하는 백자, 자유로운 미감이 살아있는 분청사기, 정교한 청화백자까지, 그 기술은 단순한 공예를 넘어 뛰어난 문명의 성취였다. 전쟁은 땅만 빼앗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조선의 숙련된 도공과 기술, 심지어 도자기를 빚는 흙과 도요(陶窯)까지 강탈해 갔다. 이때 충청도의 이삼평(李三平), 전라북도 남원의 심당길(沈當吉)과 같은 거장들도 끌려갔다. 이래서 이들은 낯선 이국에서 도요의 불을 지펴야만 했다. 이는 조선의 기술력이 송두리째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찬란한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다.
이후 일본의 도자기는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 ‘아리타야키’ ‘사쓰마야키’ 등의 브랜드로 세계를 뒤흔드는 도자기 혁명을 일으켰다. 이때 유럽은 도자기 제작 기술이 전혀 없어 동양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일본 도자기는 유럽 왕실과 귀족의 사치품이 됐고 이는 곧 유럽 내부의 기술 개발 경쟁을 촉발시켰다. 독일의 ‘마이센’ 프랑스의 ‘세브르’ 영국의 ‘웨지우드’로 이어지는 도자기 산업의 발전은 결국 조선의 도자기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기술의 본령이던 조선은 장인(匠人)을 ‘쟁이’로 부르는 천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술적 우위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핵심 인재와 원천기술을 빼앗긴 국가의 비극을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뼈아프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도자기 기술이 왜 그것을 강탈해 간 일본에서 꽃을 피웠는가. 우린 이 점을 통찰해 봐야 한다. 조선에서 도자기는 단순한 생활 도구였다. 고유의 아름다움을 한 차원 높게, 미학적, 철학적으로 살리질 못했고 그럴만한 전략도 없었다. 일본은 이 기술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다도(茶道)’라는 정신문화를 일으켜 도자기를 하나의 철학적, 심미적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국보급 ‘다완(茶碗)’으로 격상된 것은 조선의 도자기에 대한 문화적 오해가 아니라 그들의 도자기에 대한 심미적 재발견이 만들어낸 결과다. 더 나아가 일본은 이 기술을 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도자기 전쟁과 같은 또 다른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다. 칼과 창이 오가는 전쟁은 아니지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바로 ‘기술 전쟁’이다. 과거의 도자기가 당시의 최고 첨단산업이자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이었다면 오늘날 그 자리는 AI(인공지능), 반도체, 배터리 등이 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라면 이를 정제하고 가공해 가치를 창출하는 반도체와 AI, 배터리는 현대의 도자기와 같다. 자원 빈국인 한국이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된 비결은 오직 하나, 우수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기술력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경고한다. 기술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발전시켜야만 유지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란 때 일본이 도공을 납치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에게 도공은 단순히 조선에서와 같이 그릇을 만드는 천민(賤民)이 아니라 국가의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전략자산’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는 지금 AI 반도체 설계 인력과 배터리 공장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강대국들은 우리 기업의 핵심 인재들에게 천문학적인 반대급부를 제시하며 손짓한다. 만약 우리가 과거처럼 인재의 소중함을 잊고 그들이 맘껏 꿈을 펼칠 풍토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역사적 잘못은 되풀이될 수 있다. 이삼평이 일본 아리타에서 도자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인 ‘도조(陶祖)’로 추앙받으며 일본의 부강을 이끌었듯이 우리의 천재적인 공학자, 기술자들이 타국에서 그 나라의 기술패권을 위해 일하는 비극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인재의 유출은 곧 국부의 유출이며 미래의 상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중한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베푸는 것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 현재를 비추어 교훈을 얻어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조선이 도자기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기술 자체의 부재가 아니었다. 기술자를 제도적으로 비하한 것이 잘못이며 사회적 인식의 경직성이 문제였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강국이라는 자부심 뒤에 숨은 안일함을 떨쳐내는 일이다. 절대로 현재의 위상에 만족하지 말고 초격차 원천기술을 확보해 나가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는 낡은 규제의 과감한 혁파와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도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도공은 수천번 가마를 깨뜨린 끝에 명작을 빚어낸다. 그처럼 AI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실패가 도리어 자산이 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역시 중요하다.
어떻든 우리는 더 이상 왜란, 즉 ‘도자기 전쟁의 패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의 눈물과 국가적 상실을 기억해야 된다. 그 아픈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술을 가진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그 기술을 지키는 힘은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제2 도자기 전쟁’, 현재의 첨단 기술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모두 힘을 모아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가마(窯)’에 줄기차게 불을 지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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