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3개 계열사 연합 노조인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 소속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30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성과급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스1
"하이닉스가 부러운 것보다 박탈감이 더 크죠. 그간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것들이 축적돼왔고 누적된 실망감이 이번에 터진 거죠." '하이닉스가 부러워서 떼쓰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는 기자의 물음에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부문 A연구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3월 26일부터 이틀간 이뤄진 집중교섭에서 재차 협상을 벌였지만 최종 결렬됐다. 노조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5월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으며 오는 4월 23일에도 집회를 열어 사측을 압박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노사 양측의 대립은 SK하이닉스의 성과급에 대한 삼성전자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이 됐다는 것이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다. 가장 큰 쟁점은 '성과급(OPI) 상한제도 폐지'와 '성과급 재원'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제도는 소속 사업부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 이익의 20% 한도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매년 한 차례 지급하는 방식이다. 노조는 하이닉스와 동일한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활용하고 상한제를 폐지해달라고 주장한다.
얼핏 보면 '우리도 하이닉스만큼 해달라'는 단순한 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DS부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취재에 따르면 이번 파업 위기는 장기간 DS부문 내에서 쌓여왔던 분노가 공개적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DS부문 관계자들은 구체적으로 성과급 기준 공개 요구가 수년간 이어져 왔는데 사측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내부 불만이 누적됐다고 말한다. 또 그간 HBM(고대역폭메모리)에 대해 경영진이 소홀했다는 실망감도 작용했다. HBM 분야의 경우 하이닉스가 독주하면서 '추격자' 삼성전자는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번 파업 위기는 DS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파업에 나서겠다는 노조 측 주체는 '공동투쟁본부(공투본)'로 삼성전자 3개 노동조합(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전국삼성전자노조·삼성전자노조 동행)이 함께 움직이는 형태다. 특히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의 경우 '과반 노조'다. 지난 3월 31일 초기업노조에 따르면 삼성전자 전체 근로자 12만여명 중 7만명 이상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상황. 구체적으로 DS부문 5만5000여명, DX부문 1만4000여명으로 구성돼 있는 터라 사실상 DS 중심 노조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재원투명화'는 이전부터 사측에 요구했던 사안이다.
"수년간 요구했는데… 현타를 느꼈다"
수년 전 노사협의회에서 활동했다는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7~8년 전부터 성과급 재원을 산정하는 EVA(경제적부가가치) 기준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해왔다"면서 "반도체는 호황 사이클이 있어 매년 편차가 크다 보니, 예측가능성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명하게 공개해달라는 것인데 (사측은) 그게 어렵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게 하이닉스의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발표였다. 10년 넘게 근무했다는 DS부문 관계자 B씨는 "연초에 하이닉스와 우리 성과급이 발표된 것을 보고 현타(현실을 깨우치는 시간)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부터 노조원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느낀다"며 "결국 과반 노조가 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성과급과 관련해 DS부문의 박탈감이 생긴 이유는 또 있다. 모 연구원은 "사실 휴대폰사업부(현 DX)가 어려울 때에도 50%씩 챙겨주고 그랬다"면서 "그러니 더 의문이 생겼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DX의 실적이 좋지 않은 경우에도 회사가 DX를 잘 챙겨줬다는 주장이다. 앞서 B씨 역시 "DX를 챙겨줄 때도 '우리 모두 삼성전자니까'라는 명분으로 신경 썼던 것으로 안다"면서도 "DS 실적이 좋지 않았던 몇 년 전의 경우 0%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자칫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A연구원은 "언론 보도가 그렇게 나오지만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면서 "DX 친구들 만나보면 노조 조합원이 적어서 그런지 파업 자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대내외적인 요인 말고도 DS 구성원에게 쌓인 실망감은 또 있다. 바로 HBM과 관련해 사측이 오판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앞서 DS부문 모 관계자는 "경영진에서 연구를 축소시킨 감이 있다"며 "특히 몇 년 전 '슈퍼사이클'일 때 HBM사업부나 연구소 인력을 줄였는데, 그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관련 전공 서울 소재 대학 C 교수 역시 "삼성이 HBM을 먼저 개발했지만, 그 당시 AI(인공지능)가 이렇게까지 중요해지리라고 생각을 못하고 접었다"며 "결국 경영진의 판단 오류로 사원들이 혜택을 못 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거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하이닉스에 비해 느낄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면 누가 들어오겠나"
이런 현실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삼성에 대한 호감도를 떨어뜨리고, 경력사원급에서는 인재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초기업노조는 지난 3월 31일 '인재를 잃으면 삼성전자 미래 없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재차 강조했다.
A연구원은 "사실 돈도 중요하고 처우도 중요하지만 멀리 보면 더 걱정된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반도체 전공하는 친구들 입장에서 최우선으로 찾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B씨는 "우리 회사를 떠나는 이직이 너무 많다"며 "친한 동료가 '어느 곳 면접 보고 왔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죽하면 '하이닉스 사관학교'라는 말까지 나오겠느냐"면서 "사랑하는 회사가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은 최근 공개된 한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3월 16일 커리어 플랫폼 사람인이 공개한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 순위 조사에서 1위 기업은 하이닉스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2위로 나타났는데 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친 건 처음이다.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등에 본사를 둔 해외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일도 잦은 걸로 전해진다.
한편 '5월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업계에 미칠 영향은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 규모에 따라 삼성전자 창립 이래 최초로 벌어졌던 2년 전 파업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2024년 당시에는 반도체 생산 중단 등 뚜렷한 차질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3월 31일 기준 초기업노조 기준 DS부문 가입 비율은 전체 직원 7만7000여명 중 5만5000여명으로 72%를 넘어섰다. 앞서 C 교수는 "정말 총파업에 돌입할 경우 생산라인을 포함해 현장에서도 바로 여파가 올 것"이라며 "반도체 특성상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다 보니 사측은 역시 협상 의지를 계속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노조 측과)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며 "총파업까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회사 역시 지난 3월 30일 사내 공지를 통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국내 업계 1위가 되면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에게 경쟁사 대비 동등 수준 이상의 지급률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특별 포상'을 제안했다"며 "향후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의 경영성과 달성 시 특별 포상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임금협상에서는 경쟁사 보상 수준 등을 감안한 특별 포상 형태로 우선 적용하고, 제도 개선은 조합 및 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추가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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