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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진실이 중요해?…친절한 알고리즘의 통제

이렇게 AI가 제공하는 ‘하이퍼 리얼’한 가상현실에 길들여져 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이미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에게 인식을 조작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시극단 신작 ‘빅 마더’...

진실이 중요해?…친절한 알고리즘의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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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울시극단 신작 ‘빅 마더’

서울시극단 신작 '빅 마더'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람들의 인식을 조작하는 시대를 경고한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지금 우리는 딥페이크와 함께 살고 있다. BTS가 신곡 뮤비를 내면, 거의 동시에 수상쩍은 2차 콘텐트가 SNS에 등장한다. 비슷한 결의 공식 비하인드 영상도 존재하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눈을 부릅떠야 구별할 수 있다. 잠시 갸웃하다가도, 워낙 많고 악의도 없으니 아무렴 어떠냐 넘어간다.

이렇게 AI가 제공하는 ‘하이퍼 리얼’한 가상현실에 길들여져 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이미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에게 인식을 조작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시극단 신작 ‘빅 마더’(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가 보여주는 2026년 오늘의 초상이다.

흔히 연극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특히 공공단체의 웰메이드 작품들은 주로 인간과 세계에 관한 영원한 진리를 말해주는 고전을 거울삼아 오늘의 현실을 비추곤 한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서울시극단의 ‘퉁소소리’만 해도 조선 중기 고소설 ‘최척전’을 통해 전쟁의 시대에 휘말려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했다.

‘빅 마더’는 결이 확 다르다.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가 쓴 대본은 2023년 몰리에르상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화제작. 제목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패러디했지만, 굳이 1984년을 소환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직설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제프리 앱스타인 같은 실존 인물을 살짝 비틀어 작금의 정치현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서울시극단의 올 시즌 첫 작품이자 지난해 말 역대 최연소로 취임한 이준우(41) 단장의 첫 연출작답게, 어떤 변화를 예감하는 무대다.

이준우 연출. [사진 세종문화회관]

전작 ‘붉은 낙엽’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에서도 사실적이고 영화적인 무대로 호평 받아온 이준우 연출은 LED 스크린과 라이브 촬영 기법으로 무려 58개 장면을 만들어낸다. 쉴 새 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미국 정치 드라마나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전개됐던 신박한 영화 ‘서치’가 연상될 만큼 빠른 전개를 객석도 숨 가쁘게 따라가야 한다.

현직 대통령의 미성년자 성추문 동영상이 퍼지자 민주당 정권은 위기에 빠진다. 뉴욕탐사 편집국장 오웬 그린(조한철·유성주) 팀의 젊은 기자 쿡과 줄리아는 영상이 공화당원이 조작한 딥페이크라는 단서를 잡고 보도하지만, 배후엔 대의민주주의 폐지를 주장하는 투명사회연합이 있다. 그 뒤에는 가짜뉴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정치 캠페인 홍보대행사가 있고, 알고 보니 이 회사 대표는 개인정보를 수집해 여론을 조작하는 ‘빅 마더’ 프로그램의 개발자로 차기 대통령을 노린다. 진짜 아이러니는 그걸 발주한 주체의 정체다. 뉴욕탐사는 과연 이 대특종을 보도할 수 있을까. 아니, 어디까지 보도해야 할까.

엎치락뒤치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무대를 관통하는 건 ‘과연 진실이 중요한가’라는 물음이다. 누군가 알고리즘을 조작해 내 결정을 유도해 왔다는 진실 앞에서도 시민들은 별 반응이 없다. 편리함을 위해 스스로 쇼핑몰, 통신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했고 이제 내 생각까지 알아서 정치에 반영해 준다니 수고롭게 대표자를 뽑을 필요도 없다. 조지 오웰이 경고했던 감시와 통제의 ‘빅 브라더’가 편안하고 친절한 엄마의 가면을 쓰고 온 것이다.

이 질문을 팩트에 사활을 거는 기자들에게 던진다는 게 흥미롭다. 퓰리처상 수상 기자였던 그린 국장은 가짜뉴스와 클릭수 경쟁을 벌이며 딥페이크 동영상을 내리지 않고, 사적인 이유로 문제의 핵심인 홍보대행사 취재를 원천봉쇄하기도 한다. ‘빅 마더’ 이전에 이미 언론이 선택적 보도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 않냐는 얘기다. 결국 진실을 까발린 기자들은 위기를 맞지만, ‘기자를 죽여도 이야기는 남는다’는 명제로 ‘가짜뉴스와 싸워야 하는 건 기자’라고 일깨운다. 기자라면 ‘빅 마더’가 떠 먹여 주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라는 도발이다.

대본만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건 아니다. 무대 메커니즘도 그간 서울시극단이 추구했던 ‘연극성’을 뛰어넘었다. 방송 스튜디오를 닮은 유리 프레임 세트와 라이브 영상으로 채워진 무대는 정보가 생성되고 유통되는 미디어 환경 그 자체다. 뉴스 속보, 인터뷰, 막장드라마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끊임없이 호출하며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스크린은 빅 브라더가 우리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빅 마더를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전자악기의 인위적인 효과음과 불규칙한 노이즈를 반복적으로 구조화한 장영규의 음악은 공감각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부채질한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누군가의 관람 후기지만, 아마 거의 모든 관객이 받은 인상일 터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역이었던 카메라 워크와 편집의 예술이 어느새 무대 언어로 버젓이 변환되어 객석을 사로잡고 있다. ‘배우의 예술’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았던 연극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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