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681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곳으로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기암괴석과 남해의 바다 풍경이 어우러진 절경으로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상주해수욕장 쪽에서 바라 본 금산. 거대한 거북이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70년대 초에는 상주해수욕장 쪽에서 걸어올라가야만 했다.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명산에서 기도하려고 백두산에 들어갔으나 산신이 거절했고, 지리산 산신에게도 거절을 받았다.
남해 보광산으로 갔더니 산신이 받아주어 100일 기도를 했다. 이성계는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산을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막상 왕위에 올라 이 일을 시행하자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산 이름을 비단으로 바꾸자는 묘책이 나와 보광산은 금산(錦山)이 되었다.
삼불암 아래에 있는 ‘이태조 기단’. 건물 이름은 선은전(璿恩殿)이라 한다. 철종 때 건물을 세우고 관련 비석을 모셨다.
전설이긴 하지만 금산은 옛날부터 기도의 명산이라는 평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금산에는 이태조 기단(祈壇)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당연히 기도의 명산에 절집이 없을 수 없다. 바로 3대 관음도량의 하나인 보리암이다. 수행자들과 연관된 곳도 많다. 좌선대(坐禪臺)가 있고 삼사기단(三師祈壇)도 있다. 의상대사, 원효대사, 윤필거사가 기도하고 수행하던 곳이라는 것이다.
결국 금산은 오래 전부터 기도처나 수행처로서 전승되온 산이다. 그런 연유로 단군 성전도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중요한 성산(聖山)으로 받들어져 왔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명확한 기록은 없다. 그렇다고 증거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리암 밑의 쌍홍문(雙虹門). 쌍무지개 모습이라 이런 이름이 생겼다. 쌍홍문에 이르면 보리암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쌍홍문 안쪽의 계단길을 통과해 보리암으로 올라간다. 이제는 이 길로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산 뒤쪽으로 길을 닦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가락국조 <구지가>에서 보듯 우리 민족은 거북 형상의 산이나 바위를 신성시했다. 신령한 기도처에는 거북형상의 바위를 다듬어 모시기도 했다. 북한산 비봉이나 보현봉에도 이런 거북바위가 있고 영동 천태산 영국사 망탑봉에도 있다. 만약 기도처에 거북을 닮은 바위가 있으면 더욱 영험한 곳으로 받들어진다.
금산이 바로 그런 산이다. 거대한 자연석 거북바위가 산 위에 있으니 옛 사람들은 최고의 기도처로 손꼽았던 것이다. 필자도 20대 초반부터 금산에 드나들었지만 뒤늦게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보리암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보통 상사바위라고 부르는데 위에는 수 많은 돌웅덩이가 있어 9정암(九井岩)이라 부른다. 다 옛날 기도처의 흔적이다.
한민족은 거북을 신령스런 동물로 믿어왔고 거북을 닮은 바위들도 기도처로 썼다. 당연히 한민족은 바다 거북을 먹지 않는다. 어부들도 거북이 잡히면 용궁의 사자로 생각해 잘 대접해서 다시 바다로 보냈다.
해수관세음보살상은 1991년에 세웠다. 육로로 운반할 수가 없어 헬기를 이용해 이운해서 모셨다. 기암절벽 배경과 함께 보리암의 명소다.
보리암 관세음보살상 앞의 3층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석가탑 양식을 이은 탑으로 작지만 조신하고 깔금한 탑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바다 거북이 식재료였다. 유럽은 19세기에 바다 거북을 스튜나 수프로 먹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거북을 싹슬이 하다시피 수입해서 먹었다. 거북이 줄어들면서 거북요리는 무척 귀한 고급요리가 되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였고 일본은 지금도 바다 거북을 요리해 먹는 지역이 남아 있다.
근래에 거북이가 세계적인 보호동물로 지정되면서 바다와 육지 거북 포획이 줄었지만 중국은 대형 거북농장을 운영해서 식용으로 키운다. 이미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근래의 고승 통도사 경봉 스님의 글씨 간성각(看星閣). ‘석가모니 부처님이 새벽 별을 보고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따온 이름인 듯하다.
역시 경봉 스님의 보광전 현판 글씨. 이 산이 원래 보광산(普光山)이었다.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이와 반대로 한민족은 오랫동안 신령한 거북을 믿고 사랑해서 문화 전반에 거북의 조각이나 그림이 등장했다. 대문 빗장에서부터 민화,옥새, 벼루,화약통,돗자리,받침대 등에 거북의 모습을 응용했다.
한민족의 거북 신앙이나 거북 사랑에 대한 내용은 금년에 출판되는 저의 저서 <거북을 말하다>(가제)에 자세히 실어 놓았다.
금산은 38경(景)이라 해서 기암괴석들에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름은 다 몰라도 기이한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금산산장. 예전에는 이곳이 선방터인 곳으로 추정된다. 전망이 훌륭한 산장이다.
금산 단군성전은 1995년에 세워졌다. 마당 옆 바위에 인근 사람들이 금산 산신을 모시기 위해 결성한 산신계(山神契) 각자가 있다.
주세붕이 쓴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각자. 쌍홍문을 경유해 금산에 올랐다는 뜻이다.
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시누대 숲길.
글 사진. 노승대
‘
우리 문화
’
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 18
년간 공부했다
.
인사동 문화학교장
(2000~2007)
을 지냈고
,
졸업생 모임
‘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
인사모
)’,
문화답사모임
‘
바라밀 문화기행
(1993
년 설립
)’
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
『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
,
『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
(2020
년 올해의 불서 대상
),
『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
』
(2022)
을 집필했다
.
*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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