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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안의 문화이야기] 경주 감은사지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 기사 제보 및 투고

[지안의 문화이야기] 경주 감은사지

토함산 너머 감포로 내달렸다. 문무대왕 관련유적을 찾아간 것이다. 신라의 왕 중에서 문무대왕은 능묘가 없다. 불교식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길도 많이 달라졌다. 4차선 토함산터널이 뚫린 것이다.대종천을 따라가니 왼쪽 언덕 위에 감은사지 쌍탑이 서서히 나타난다. 감은사지 쌍탑은 한마디로 우람하고 당당하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기백이 넘쳐난다. 높이도 13.4m에 이른다. 신라 석탑 중 가장 큰 규모다.

법당 아래에는 60cm 높이로 긴 돌을 마루널처럼 깔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동해 용왕이 물길을 따라 들어올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문무대왕은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당나라 세력도 몰아낸 위대한 왕이었지만, 언제나 왜구가 근심거리였다.

왜구(倭寇)는 '왜나라 도둑 떼거리'라는 뜻으로 간단히 말해 일본 해적이다. 왜나라는 신라 땅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걸핏하면 왜구가 몰려와 약탈 행위를 했다.

대종천이 동해와 만나는 곳에서 가까이 있는 대왕암. 바위섬 안쪽에 인공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어 문무왕 수중릉이라 하기도 하고 산골처로 보기도 한다.

문무대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13년 후인 681년에 죽었다. 문무대왕은 자신이 죽은 뒤 불교식으로 화장해서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했다. '동해의 용왕이 되어 왜구를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감은사지 쌍탑에서는 백제식과 신라식이 융합된다. 계단식 층급받침은 신라 벽돌탑에서 가져 왔고 추녀선이 살아있는 지붕돌은 백제의 석탑에서 가져왔다.

감은사지 아랫쪽에 있는 용못은 역시 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석축에서 튀어나온 쐬기돌은 신라양식으로 석축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왜구를 물리치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대를 이은 아들 신문왕이 마저 완공했다. 감포에는 문무대왕 관련 유적인 감은사지, 대왕암, 이견대가 남아있다.

용못에서 올려다본 감은사지. 동해에서 용못까지 온 용왕은 수로를 통해 법당 밑에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이런 높이라면 어떤 방식의 수로를 설치했을까?

이견대(利見臺)는 신문왕이 대왕암이 잘 보이는 곳에 지은 정자다. 왕은 용도 만났고 용의 지시로 모든 재앙을 없앤다는 만파식적 피리를 얻기도 했다.

글 사진.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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