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지금 속초는 ④〉 철도는 오는데, 속초역 도시는 준비됐나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는 속초의 오래된 약속이었다. 1987년 대선 공약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 뒤로 선거 때마다 반복됐다. 대통령 후보들은 약속했고, 지역은 기다렸고, 예비타당성 조사는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지금 속초는 ④〉 철도는 오는데, 속초역 도시는 준비됐나

속초=박철성 기자 〈리서치센터 국장·칼럼니스트〉

〈지금 속초는 ④〉 철도는 오는데, 속초역 도시는 준비됐나

■ 1987년 대선 공약에서 시작된 39년의 기다림 — 공정률 11%, 역세권 용역 중단, 인구 8만 선 붕괴가 묻는 책임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는 서울 용산에서 속초까지 99분 연결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전체 공정률은 2025년 12월 기준 11% 수준에 머물렀고, 속초역 역세권 개발 타당성 조사 용역은 2025년 9월 수요 부족을 이유로 중단됐다. 철도는 오고 있지만, 속초역 도시가 누구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시민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일러스트=AI 생성

철도는 온다.

그런데 도시는 준비됐나.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는 속초의 오래된 약속이었다. 1987년 대선 공약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 뒤로 선거 때마다 반복됐다. 대통령 후보들은 약속했고, 지역은 기다렸고, 예비타당성 조사는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속초는 오래 기다렸다. 강원 북부권은 더 오래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이름이 지금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다.

■ 39년 된 공약

1987년 처음 공약으로 등장한 뒤, 이 사업은 오랫동안 선거의 언어로만 존재했다. 착공보다 약속이 먼저였다. 노선보다 구호가 먼저였다.

2001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 없음으로 탈락했다. 2010년, 다시 탈락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강원도 제1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2016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경제성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B/C는 0.79, AHP는 0.518이었다. 경제성 기준 1.0을 밑돌았지만 지역균형발전 명분으로 통과됐다.

2022년 10월, 착공식이 열렸다. 국토교통부는 2027년 개통을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은 2029년이다.

2026년 3월 말 기준 전체 공정률은 11%다. 7공구 인제 북면 용대리~고성 토성면 산악터널 구간 공정률이 34%를 기록했고, 1공구 춘천시 근화동~신북읍 의암호 하저터널 구간은 25%를 넘어섰다. 그러나 2공구 춘천 신북읍~화천 간동면은 2.2%, 6공구 인제 북면의 공정률은 1%에 그쳤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앞으로 3년간 약 2조 원 이상이 추가로 투입돼야 하지만, 연간 7000억 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확보된 예산은 2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철도는 온다고 한다. 그런데 예산이 빠듯하다. 공정률 11%짜리 철도가 2029년에 오려면, 남은 3년의 속도는 지금까지와 달라야 한다.

■ 서울 용산에서 속초까지 99분

계획대로라면 서울 용산에서 속초까지 99분 만에 연결된다. 총사업비 3조632억 원. 전체 93.7㎞ 단선전철 신설. 전체 구간의 86%인 81.5㎞는 터널로 구성됐다. 춘천, 화천, 양구, 인제, 백담, 속초를 잇는다.

이 숫자는 강력하다. 관광객에게는 당일치기 속초가 열린다. 투자자에게는 역세권의 시간이 열린다. 부동산 시장에는 새로운 기대가 붙는다.

그러나 철도가 지역을 살리는 것은 자동이 아니다. 역이 생긴다고 도시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철도는 사람을 데려오지만, 사람을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붙잡는 것은 도시의 내용이다.

철도는 교통수단이다. 역세권 개발은 도시계획이자 부동산 사업이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런데 속초에서는 39년 동안 두 말이 하나처럼 쓰였다.

■ 역세권이 멈췄다

속초시는 2022년 국토부 투자선도지구 공모 선정 이후 LH와 함께 역세권 개발을 추진해 왔다. 마이스(MICE) 산업 유치, 공공기관 이전, 복합생활거점 조성을 내세우며 "동서고속철 시대 신성장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2025년 9월, 역세권 타당성 조사 용역이 중단됐다. 이유는 "수요 부족"이었다.

KTX가 온다. 그런데 역 주변을 어떤 도시로 만들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6·3 지방선거 TV 토론에서 이 문제가 터졌다. 민주당 후보는 "역세권 개발사업은 2025년 9월 타당성 조사 용역이 중지된 상태인데 어떻게 마이스 산업 복합거점 조성을 말할 수 있느냐"고 추궁했다. 국민의힘 후보는 "KTX가 개통되면 역세권 개발은 당연히 진행된다"고 반박했다.

역세권 개발이 수요 부족으로 멈춘 도시에 철도가 오고 있다. 그 도시가 지금의 속초다.

■ 빨대효과를 누가 막을 것인가

고속철은 양날의 칼이다. 서울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까워진 만큼 빨려 나갈 수도 있다.

소비가 서울로 빠져나갈 수 있다. 청년이 더 쉽게 떠날 수 있다. 관광객이 잠시 들렀다 사라질 수 있다. 속초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이른바 빨대효과다.

철도가 도시를 살리려면 역 주변에 머무를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루 더 머물 이유. 돈을 쓰고 갈 이유. 지역 상권과 연결될 이유. 시민이 일하고 살 이유.

그 이유를 만들지 못하면 철도는 속초를 연결하는 길이 아니라, 속초의 사람과 돈을 밖으로 빼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속초역 역세권 개발의 본질은 건물을 얼마나 올리느냐가 아니다. 사람을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가다.

■ 철도가 와도 떠난 사람은 돌아오는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속초는 지금 비어가고 있다.

2025년 10월 기준 속초시 주민등록 인구는 7만9827명으로 집계됐다. 8만 명 선이 무너진 것이다. 아파트는 늘고 세대 수도 증가했지만 인구는 매달 100~200명씩 감소하고 있다.

청년인구 18~45세는 10년 새 3만1163명에서 2만5355명으로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같은 기간 14.3%에서 22.5%로 급등했다. 출생아 수는 596명에서 308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연간 250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오고 간다. 그 돈은 얼마나 속초에 남는가. KTX가 와서 관광객이 더 빠르게, 더 많이 오면, 떠난 청년들은 돌아오는가.

속초의 상권 구조를 보면 답이 나온다. 닭강정 골목, 중앙시장, 동명항 포차거리.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한정돼 있다. 시내 중심가에는 빈 점포가 늘고 있다. 관광 수익이 지역 전반으로 퍼지지 않는 구조다.

KTX가 오면 이 구조가 바뀌는가. 아니면 더 빠른 속도로 관광객이 오고, 더 빠른 속도로 돈이 빠져나가는가.

■ 공공성이 빠진 역세권은 위험하다

역세권 개발에는 속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속도만으로는 안 된다. 공공성이 빠진 역세권은 부동산 판이 된다.

교통망이 좋아지면 땅값은 움직인다. 상권 기대가 붙으면 임대료가 오른다. 관광객이 늘면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이 먼저 들어온다. 그 사이 시민의 생활 인프라는 뒤로 밀릴 수 있다.

학교, 병원, 버스, 주차, 보행, 청년 주거, 노인 이동권, 지역 상권 보호. 이런 것들이 빠진 역세권은 도시가 아니라 개발 구역이다.

속초역은 철도역 하나가 아니다. 앞으로 속초의 공간 질서를 바꿀 축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속초시는 역세권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강원특별자치도는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가. 국토교통부는 공사만 보고 있는가, 개통 이후 도시 영향까지 보고 있는가.

■ 11%의 지금, 100%의 그날

공정률 11%는 늦음의 숫자만이 아니다. 아직 준비할 시간이 남았다는 숫자이기도 하다.

철도가 100% 완성된 뒤에는 늦다. 역세권 땅값이 먼저 움직인 뒤에는 늦다. 투자자 논리가 도시계획을 앞지른 뒤에는 늦다.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이 먼저 자리를 잡은 뒤에는 시민의 자리를 되찾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공정률 11%의 지금, 속초는 물어야 한다. 역세권 개발의 공공성은 무엇인가. 개발 이익 환수 장치는 있는가. 원주민 보호 대책은 있는가. 청년과 노인이 함께 쓰는 교통 체계는 있는가. 관광객 동선과 시민 생활권은 충돌하지 않는가. 속초역은 속초 시민에게도 좋은 역인가.

■ 철도는 오지만, 답은 아직 오지 않았다

속초에는 아직 기차가 없다. 2026년 6월, 기자는 속초에 있다. 버스로 왔다. 4시간 걸렸다.

속초 바다는 오늘도 아름답다. 관광객은 오늘도 온다. 그러나 속초역 예정지는 아직 빈 땅이다. 역세권 개발 용역은 중단됐다. 공정률은 11%다.

1987년 공약이 2026년에 11%다.

39년 동안 이 철도는 선거 때마다 표를 먹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미래로 미뤄졌다.

영랑호에서 이미 물었다. 속초아이에서 이미 봤다.

허가 먼저, 검증 나중. 홍보 먼저, 책임 나중.

그 패턴이 속초역에서 반복돼서는 안 된다.

철도는 오고 있다. 하지만 답은 아직 오지 않았다.

속초에서, 지금 묻는다.

■ 〈지금 속초는〉 시리즈는 계속된다.

다음 편에서는 속초 현지에서 마주한 장면들을 묶는다. 영랑호의 아침, 먹거리촌의 밤, 관광객 2500만 명과 주민 8만 명의 간극. 바다 앞에서 본 속초의 얼굴을 마지막 현장편으로 기록한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