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에 외국인·기관 동반 매도 폭탄
-연준 금리 인하 기대 후퇴 속 환율·금리 급등, 금융시장 전방위 압박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에 대한 ‘48시간 최후통첩’ 시한을 하루 앞둔 23일 코스피가 6% 넘게 폭락하며 5,400선을 간신히 지켰다.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 ‘투매’에 나선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순매수로 낙폭을 떠받쳤지만 급락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75.45포인트(6.49%) 급락한 5,405.75에 마감했다. 지수는 장 초반부터 약세를 키우며 전장 대비 201.05포인트(3.48%) 내린 5,580.15로 출발한 뒤 낙폭을 확대했다. 장 마감 직전에는 한때 5,397.94까지 밀리며 5,4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장 시작 직후에는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 호가 일시 효력 정지)가 발동됐다. 급락장 속에서 시장 변동성이 극도로 확대된 모습이다.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지수를 강하게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6,750억원을 순매도했고, 기관은 3조8,170억원을 팔아치웠다. 기관 순매도 규모는 역대 최대치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 시장에서도 2조2,39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현·선물 시장을 동시에 압박했다.
반대로 개인은 저가 매수에 대거 나섰다. 개인 순매수 규모는 7조30억원으로, 지난달 5일 기록한 종전 최대치(6조7,790억원)를 불과 두 달도 안 돼 경신했다. 개인의 ‘역대급 매수’에도 외국인·기관의 매도 공세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환율과 금리도 급등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7원 오른 1,517.3원을 기록했다. 위험 회피 심리가 커지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달러 강세가 심화된 결과다.
시장의 공포를 키운 것은 중동 정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48시간 이내에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 시설을 초토화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해협 봉쇄 강도를 더 높이겠다고 반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 시한은 한국시간 24일 오전 8시 44분께로 파악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최후통첩으로 중동 전쟁이 분기점에 직면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앞두고 공포 심리가 확산했다”며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 및 금리는 급등하는 등 한국 시장 전반이 불확실성에 노출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당국이 시장 안정 조치를 내놓더라도 금융시장의 방향성은 중동 전쟁 향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고유가·고물가·고금리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주식시장은 근본적으로 하방 압력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가 급격히 약화된 점도 매도 심리를 자극했다. 연준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로 꼽혀온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중동 갈등과 유가 상승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고, 이로 인해 기존의 금리 인하 입장을 접고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지해온 인사가 기조를 선회하면서 시장에는 추가 충격이 가해졌다.
이경민·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주요국 중앙은행의 매파적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우려로 돌아서면서 국채 금리가 상승했고, 이에 유동성 기대도 약화되면서 금융 시장 전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은 대부분 급락했다. 삼성전자는 6.57% 내렸고, SK하이닉스는 7.35% 떨어졌다. 현대차(-6.19%), LG에너지솔루션(-5.19%), SK스퀘어(-8.39%) 등 대형주가 일제히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 주말 BTS의 광화문 공연으로 관심을 모았던 하이브는 15% 넘게 급락했다.
업종별로는 오락·문화(-11.38%), 증권(-8.23%), 의료·정밀기기(-8.19%), 금융(-7.12%) 등에서 낙폭이 컸다. 투자심리 위축과 변동성 확대가 성장주와 금융주를 동시에 압박한 모습이다.
코스닥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64.63포인트(5.56%) 떨어진 1,096.89에 마감했다. 지수는 31.66포인트(2.73%) 내린 1,129.86에 출발한 뒤 하락 폭을 키우며 5% 넘게 밀렸다. 코스닥에서도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590억원, 2,000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개인만 4,660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서는 삼천당제약(3.75%)만 상승 마감했다. 에코프로(-7.49%), 알테오젠(-6.51%), 에코프로비엠(-6.67%), 레인보우로보틱스(-9.86%) 등 주요 종목들은 줄줄이 하락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각각 27조1,900억원, 10조9,950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과 메인마켓 거래대금은 총 17조2,102억원에 달해, 공포 장세 속에 매매가 폭증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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