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발발로 원유의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3월 23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517.3원으로 마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환율(좌)과 코스피. 서명곤 연합뉴스 기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2월 28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중동 전쟁이 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수송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 우리나라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휴전을 위한 협상설이 나오고 있지만, 전쟁의 영향을 만회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 4년여 만에 100달러대
고유가는 한국 경제 전 분야에 입체적 충격을 주는 악재다. 브렌트유 배럴당 선물 가격(종가 기준)은 지난해 12월 50달러 후반대였지만, 전쟁 발발 후 수직 상승했다.
3월 13일 100달러를 돌파한 뒤, 3월 20일 112.19달러까지 찍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급진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3월 23일 99.94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협상 불확실성이 부상하며 다시 10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100%로, 202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위다. 특히 원유의 70.7%, 액화천연가스(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란의 앞마당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더욱 뼈아픈 이유다.
그렇다고 우회 루트로 돌아왔다간 운임을 최대 50∼80% 더 내야 한다. 운송기간도 최소 3∼5일은 늘어난다. 과거 이 지역에서는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도 있다.
유가 상승은 석유류 가격을 통해 거의 즉각적으로 소비자물가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공산품 등 전 분야에는 2∼3개월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월(122.56)보다 0.6% 높은 123.25(2020년 수준 100)로 집계됐다. 아직 전쟁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연속 오름세다. 소비자물가지수는 2월 2.0% 상승에 그쳤지만, 석유류 가격 상승으로 3월엔 오름폭이 상당히 커질 전망이다.
환율 1,500원대 뉴노멀 되나
이란 전쟁이 4주 넘게 이어지면서 금융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3월 23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6.7원 급등한 1517.3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다.
과거에도 환율이 1천500원대로 치솟은 적 있지만, 이번에는 고유가가 동반됐다는 점에서 1천500원대가 뉴노멀(새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환율 급등(원화가치 하락)은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 대체로 유리하다는 게 과거 공식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해외 조달 및 생산, 투자 비중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오히려 수출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
국내 기업들은 통화 스와프, 원자재 공급망 재편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봉책에 불과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까지 들썩일 분위기다. 3월 22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직전 주에 금리 인하 기대가 확 꺾이고 연내 인상 전망이 급부상했다. 미국, 유럽,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메시지를 발신해서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중동 사태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를 언급했다. 한국은행도 오는 4월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각에선 하반기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 금리는 한발 앞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월 23일 연 3.617%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27일 3.041%에 비해 57.6bp(1bp=0.01%포인트)나 올랐다.
고물가 경기침체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가파른 고물가·고환율 흐름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금리마저 오르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의 동반 위축이 나타나고, 무리하게 대출받은 ‘영끌·빚투’ 족이나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부터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중동사태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인공지능(AI) 호황에 힘입어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의 경우, 항공 물류길이 차질을 빚으면서 운임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 전력 소비가 막대한 업종 특성상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도 거론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0%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의 성장률 2.0% 전망은 배럴당(두바이유) 62달러를 기준으로 짠 결과다. 재정경제부도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3월호에서 8개월 만에 ‘경기 하방’ 위험을 꺼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평균 유가가 150달러 이상인 비관적 시나리오를 상정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p) 하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물가는 2.9%p 급등하고, 경상수지 감소액은 767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제유가가 4월 초 배럴당 15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봤다. 이럴 경우 경기가 침체하는 가운데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화 약세가 수출에 도움을 줄 거란 전망도 있지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소비가 줄어들 테니 크게 기대할 수 없다”며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1차 충격이 닥쳤는데 거시경제에 2차 충격이 오기 전에 중동 사태가 종료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
이대희 연합뉴스 경제부 기자 2vs2@yna.co.kr
작성 : 2026. 3. 26 [202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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