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연구원(KIET)이 발표한 ‘첨단산업의 한·중 경쟁력 분석과 정책 방향’ 보고서는 한국 산업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전기차, 디스플레이 등 주요 첨단 제조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핵심 기술과 고급 공정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대규모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 규모를 확대하고 정부의 정책 지원을 결합해 산업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며,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가격 경쟁력과 양산 능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보고서가 언급한 산업별 차이를 살펴보면, 먼저 반도체는 한국이 메모리 공정 기술과 생산 경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설계와 파운드리, 장비 분야까지 전방위 투자를 확대하며 자립도를 높이고 있다. 배터리 산업은 한국 기업들이 고성능 배터리 기술과 글로벌 고객 기반에서 강점을 보인 반면, 중국은 원재료 확보와 대규모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차와 디스플레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는데, 중국이 가격과 생산 속도, 산업 생태계 규모에서 한국과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닌 산업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특정 기술 분야에서 우위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급망과 생산 규모, 정책 지원,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포함된 종합적인 산업 생태계가 경쟁력을 결정하고 있다. 기술 우위만으로는 경쟁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한국의 산업정책이 기술 중심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생태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의 수치와 점유율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먼저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영역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과 원재료 확보 능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격차 축소 혹은 이미 추월이 시작되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 규모를 빠르게 확대하며 글로벌 판매에서도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대규모 내수 시장에서 축적된 생산 경험과 가격 경쟁력은 중국 기업의 중요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가파르다. 과거 LCD 분야에서 시작된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생산 확대는 이제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격차는 빠르게 줄어드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첨단산업 전략은 이러한 구조 변화를 전제로 새롭게 설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려는 접근보다 확실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자원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요구된다. 반도체의 차세대 공정, 차세대 배터리, 첨단 소재와 장비 등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연구개발(R&D)과 실증, 생산, 시장 확대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기술이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원호 박사
또한 공급망과 산업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첨단 산업 경쟁력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연결 구조에서 결정된다. 소재와 장비, 데이터,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결합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기술 우위 역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결국 우리 산업이 직면한 과제는 기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진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중국의 추격이 우리 산업 전략의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KIET 보고서의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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