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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혜민 키움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 미국 조지아주립대 금융학, 키움증권 혁신성장 리서치팀 팀장
2026년 3월 이후 국내 주식시장은 높은 변동성 속에서도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란 전쟁 리스크, 유가 급등, 외국인 대규모 순매도 등 대외 변수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실적 기반의 펀더멘털을 중심으로 빠르게 안정성을 회복했다. 지수는 6000선을 넘어 어느새 7000선을 돌파했다.
반면, 코스닥 바이오 섹터는 상대적으로 뚜렷한 투자 심리 위축을 보인다. 일부 제약·바이오 종목에서 발생한 급락은 기존의 경계 심리를 강화하며 섹터 전반에 대한 회피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바이오에 대한 신뢰 훼손’이라는 인식이 재차 부각되는 상황이다. 다만, 현재 국면에서 바이오 섹터를 일괄적으로 회피하는 전략이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 섹터에 대한 신뢰 훼손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초 센토코어(Centocor)의 패혈증 치료제 센톡신(Centoxin) 임상 실패 이후 바이오테크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2000년대 초 게놈 버블 붕괴 때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그때마다 시장은 ‘역시 바이오는 투기다’라는 결론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후의 흐름이다. 임상 데이터로 검증된 기업과 기대감 중심 기업 간 차별화가 본격화했고, 이 과정에서 암젠(Amgen), 바이오젠(Biogen), 길리어드(Gilead) 같은 글로벌 선도 기업이 부상했다.
국내 역시 유사한 흐름을 경험했다. 2019년 연이은 임상 3상 실패 사태 이후, 시장은 p값(p-value) 및 주평가지표(primary endpoint)에 대한 해석이 투자 판단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후 기술이전이나 임상 데이터로 검증된 기업(알테오젠·리가켐바이오·에이비엘바이오 등)이 차별화되며 시장 내 재평가가 진행됐다.
섹터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섹터가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신뢰성 논란은 분명 시장에 상처를 남기지만, 동시에 ‘무엇이 진짜 바이오테크인가’를 더 날카롭게 구분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K-바이오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미국 바이오산업은 한국보다 약 20~25년 앞서 섹터가 형성됐다. 미국이 1990년대 버블 붕괴 후 위험 조정 순현재가치(rNPV) 모델을 정착시키고 데이터 중심 문화로 이행한 것처럼, K-바이오도 지금 그 과도기의 한가운데 있다.
2025년 K-바이오의 기술이전 실적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총규모 약 130억달러(약 18조9000억원),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 대상 기술이전 건수는 8건으로, 지난 10년 평균 연 2.8건을 크게 웃돌았다. 기술이전한 알테오젠의 키트루다SC(피하주사)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유한양행이 기술이전한 렉라자 병용 요법이 폐암 1차 치료제로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 선호 의약품에 등재되는 등 산업 역량의 질적 도약을 보여주는 결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함께 기대감 중심의 일부 종목이 공존해 왔다는 점도 이번 변동성 확대 배경으로 작용했다. 최근 신뢰 훼손 이슈는 이러한 구조적 이중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바이오 투자의 연구개발(R&D) 테마는 메가 트렌드에서 ‘소사이클(개별 기술 중심의 선별 국면)’로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PD-1 면역항암제)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후에 항체-약물 접합체(ADC),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CAR-T), 자연살해세포(NK) 등 같은 소사이클 국면으로 전환된 바 있다.
GLP-1 비만 치료제 역시 지난 4~5년간 글로벌 바이오 섹터의 메가 트렌드를 주도했다. 그러나 현재는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양강 구도 속에서 일라이 릴리의 점유율 우위로 선두 주자가 재편되며 GLP-1 사이클도 정점을 지나고 있다. 메가 트렌드 이후엔 언제나 소사이클 국면이 찾아왔다. 지금이 바로 그 구간이다.
소사이클 국면에서 주목할 모달리티(양상) 중 하나는 리보핵산(RNA) 치료제다. 2018년 최초 짧은 간섭 리보핵산(siRNA) 승인 이후 2020년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상업화를 거치며 플랫폼 검증이 이뤄졌고, 앨라일람의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ATTR) 심근병증 치료제 암부트라(Amvuttra)가 심혈관 시장으로 적응증 확장에 성공하면서 RNA가 만성질환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앨라일람의 2025년 매출은 37억달러(약 5조4000억원)로 전년 대비 65% 증가했고,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적자 기술주에서 실적 성장주로 변모했다.
다만, RNA 치료제가 지속적인 테마로 급부상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실적 개선, 인수합병(M&A) 그리고 비만·대사 질환 데이터가 필요하다. 상반기 중 발표될 아이오니스(Ionis)의 펠라카르센(Pelacarsen) 임상 3상 결과는 Lp(a)(리포단백질 a) 저하가 실제 심혈관 이벤트 감소로 이어지는지를 검증하는 첫 사례로, RNA 플랫폼 확장의 핵심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한편, 이중 항체, ADC 차세대 기전, 체내(in vivo) 세포 치료제, 중추신경계(CNS), 대사 질환 신규 기전 등도 동시에 경쟁하는 각개전투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특정 소사이클 테마가 아직 부상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어떤 기업이 어떤 데이터를 언제 공개하는가’가 종목 선택의 핵심이 됐다. 테마에 편승한 종목이 일괄적으로 움직이기보다 파이프라인 데이터 검증 여부와 경쟁 시장 상황에 따른 개별 옥석 가리기 장세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빅파마의 전략 변화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특허 절벽에 직면한 빅파마는 내부 R&D 효율화를 진행하는 동시에, 외부에서 검증된 파이프라인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6년 1~2월 글로벌 바이오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60% 급증했지만, 거래 건수는 감소했다. 이는 거래 건당 규모가 커졌음을 의미하며, 자본이 검증된 소수 파이프라인으로 집중되는 구조가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기술이전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체 개념 증명(Human PoC) 확보와 후기 임상 가시성 등이 핵심 조건으로 작용한다.
현재 국내 바이오 섹터는 투자 심리 위축과 신뢰 훼손이 동시에 반영된 국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간은 단순한 하락 국면이라기보다 산업 내 경쟁력 차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구간에 가깝다. 모든 종목에 대한 일괄적 회피보다 데이터 기반 선별 전략이 중요한 이유다.
5월 유럽간학회(EASL)에서 공개될 MA SH(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 파이프라인을 시작으로,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 그리고 알테오젠 기술이전 자산의 상업화 전환 여부까지, K-바이오의 ‘가치’를 다시 확인시켜 줄 이벤트가 이어질 예정이다. 결국 시장은 다시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임상 경쟁력과 상업화 가능성을 동시에 갖춘 기업은 이러한 국면에서 오히려 존재감을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불확실성이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된 구간이다. 과거 사례를 감안할 때 데이터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점진적으로 기회로 이어질 시점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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