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 반도체와 금융주를 중심으로 한 대형주 매도 속에서 방산·에너지·전력 인프라 관련 종목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선별적 순환매’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단순한 차익실현을 넘어 산업 구조 변화에 베팅하는 흐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3월 30일~4월 3일)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대규모 매도와 매수를 동시에 진행하며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특히 시장 대표주를 집중적으로 던지는 대신, 정책 수혜와 글로벌 수요가 기대되는 업종에 자금을 밀어 넣는 전략이 두드러졌다.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팔고 또 파는’ 대형주 매도세다.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2조8000억원 넘게 순매도하며 압도적인 규모로 차익실현에 나섰다. 이어 SK하이닉스 역시 대규모 매도 대상에 포함됐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가 여전히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단기 상승에 따른 부담과 차익실현 욕구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반면 매수 상위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외국인 자금은 방산과 2차전지, 인프라 관련 종목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대표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500억원 이상 순매수되며 핵심 수혜주로 부각됐다. 글로벌 군비 증강 흐름과 중동·유럽 지역의 긴장 고조가 맞물리며 방산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다.
또 다른 축은 2차전지다. 삼성SDI 역시 1000억원 넘는 순매수를 기록하며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다.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배터리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부가가치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기업 중심으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철도·방산 인프라 수혜 기대가 반영된 현대로템 역시 강한 매수세를 보였다. 글로벌 철도 프로젝트 확대와 함께 방산 부문 성장 가능성이 동시에 부각되며 외국인 자금의 관심을 끌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흐름을 단순한 업종 순환이 아닌 ‘리스크 회피형 재배치’로 보고 있다. 금리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변수 속에서, 경기 민감 대형주보다는 정책 수혜가 명확한 산업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산과 에너지, 인프라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중장기 성장 스토리가 뚜렷한 영역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이러한 움직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반도체 등 기존 주도주가 쉬어가는 사이, 새로운 주도 업종을 탐색하는 과정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형주 매도가 지속될 경우 지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지속성이다. 외국인 자금이 단기 트레이딩에 그칠지, 아니면 중장기 투자로 이어질지에 따라 시장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명확한 방향성보다는 ‘빠른 순환’이 특징으로, 투자자들의 대응 역시 보다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 관계자는 “지금 시장은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자금 흐름의 이유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며 “외국인이 왜 팔고, 왜 사는지를 이해해야 다음 흐름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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