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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칼럼]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1811년부터 1816년까지 영국의 섬유 공업 지대에서 일어난 대규모 기계 파괴 운동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의 도래로 영국의 섬유 공장은 사람이 손으로 하던 일들을 기계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종교칼럼]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김성우 덕암성당 주임신부

▲ 김성우 청주 덕암성당 주임신부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1811년부터 1816년까지 영국의 섬유 공업 지대에서 일어난 대규모 기계 파괴 운동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의 도래로 영국의 섬유 공장은 사람이 손으로 하던 일들을 기계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방적기와 직조기 같은 거대 기계의 등장은 숙련된 수공업자들의 일자리를 단숨에 위협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생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기계가 중심이 된 새로운 생산 형태로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영국의 노동자들은 결국 공장에 난입해 기계를 부수며 자본가들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러다이트’라는 명칭은 노동자들이 결속을 위해 가상 속 인물인 ‘네드 러드(Ned Ludd) 장군’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내세운 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이 처절한 저항은 오히려 자본가를 보호하려는 영국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 앞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영국 의회는 기계 파괴 행위에 대해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체포되어 사형당하거나, 호주 등 해외 식민지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러다이트 운동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성격을 지니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한 생존권 투쟁으로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당시 노동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기계’ 앞에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었고, 숙련된 장인(匠人)들이 단순 노동자로 전락했다. 심지어 성인 남성들보다는 훨씬 낮은 임금에 채용할 수 있었던 아동들이 위험천만한 공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을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작업을 하게 된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초반의 풍경과 닮아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저항의 기로에 서 있다. 바로 인공지는(AI) 산업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이다. 하지만 최근의 저항은 놀랍게도 다수의 대중이 아닌,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소수의 내부자들로부터 시작됐다. 생성형 AI 산업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오픈AI(OpenAI)와 앤트로픽(Anthropic)의 핵심 연구원이었던 제이콥 콕슨이 저항의 필두에 섰다. 그의 경고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에반 허빙거를 비롯해, AI 개발사 내부에서 인류의 미래를 연구하던 전·현직 일류 연구원들과 최고경영자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단순히 산업현장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황 레오 14세는 올해 5월에 반포한 자신의 첫 번째 회칙인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 자체를 교회가 반대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발전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보다 더 냉철한 윤리적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미국과 함께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또한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이미 학계와 언론에서는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 운동이라는 표현이 새 시대의 키워드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AI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에게 더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경고를 외면한 채, 순간의 편리함과 눈앞의 경제적 이익만을 고집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19세기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노동자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는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이미 일부 업종에서는 신입직원의 자리를 이미 AI가 대신하고 있다.

AI는 분명 우리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맹목적인 신뢰와 무분별한 사용은 결국,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암울한 미래의 모습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보다 책임감을 갖고 과학의 진보를 인간이 주체적으로 활용하여야 될 것이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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