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모신 호국원은 풍수리지리적 공간설계가 내재되어 있다. 명당 터의 좋은 에너지 파장을 감응하고 발복을 위해서는 자손들이 자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은 국립영천호국원 제3충령당 전경.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가는 나라를 지킨 숭고한 영령(英靈)들을 모시기 위해 국립현충원 2곳(서울, 대전)과 호국원 5곳(경기도 이천시, 경북 영천시, 전북 임실군, 충북 괴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등을 조성하였다. 또한 강원 횡성과 전남 장흥에도 조성할 예정으로 있다. 호국원은 현충원에 모실려는 국가유공자의 부족을 보완하고 예우하기 위한 일종의 전국 소재 국립묘지 체계를 갖춘 곳이다.
국립현충원은 1953년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방아 동작구에 국립묘지 부지를 확정하고 3년에 걸친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처음에는 군인 위주로 안장을 하다가 1965년에 대통령령으로 군 묘지령이 제정되면서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를 국민의 이름으로 모셔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시키도록 하였다. 국립대전 현충원은 1985년 11월 13일 개장하였으며 두 번째 개장한 국립묘지로 2000년대 이후 별도로 확장된 호국원보다 앞선 선행 모델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 분들이 모셔져 있다. 이중 김대중·김영삼 대통령 묘역은 합장묘로 조성되었다. 봉분은 하나지만 두 분이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대전현충원에는 퇴임 후 모실 대통령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현재는 최규하 대통령 내외가 모셔져 있으며 퇴임 후 세 분의 국가 원수 내외를 합장할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 놓았다.
그렇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 선영에 가묘(假墓)가 있으나 ‘북녘 땅이 보이는 전방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한 뒤 파주시 문산읍에 모시려다 장지를 못 구해 현재는 자택에 보관 중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가장을 치룬 뒤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모셔져 있다. 두 분은 국가 수반이면서도 여러 정치적 문제로 현충원 안장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밖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유서에 ‘화장하고 집과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 달라’고 해서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 뒷산에 묘역을 조성해 안장을 하였다.
서울현충원은 대통령 선거 후 당선인이 정부 관계자와 함께 처음 행사지로 찾는 곳인 만큼 상징성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년 정당의 시무식 때나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당대표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방문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 국가 제정 기념일인 현충일과 명절 때는 전국의 일반인과 유가족들의 참배가 이루어져 호국 영령과의 만남의 공간으로 자리해 오고 있다.
국립호국원은 2001년 1월 1일 영천호국원이 가장 먼저 개원하였으며, 이후 임실(2002년), 이천(2008년), 산청(2015년), 괴산(2019년), 제주(2021년) 등이 조성되었다. 권역별 호국원에 안장되는 유해는 참전유공자, 장기복무 제대 군인 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국가에 기여한 다양한 계층을 포괄적으로 예우하기 위함이다. 즉 현충원 중심의 선별적 안장에서 보훈 대상자를 국가유공자를 포함한 전반적으로 확대가 이루어진 결과로 조성된 국가묘지이다.
이처럼 서울과 대전 현충원은 장성 및 고위 인사 위주의 안장 구조는 국가 중심의 위계적 상징성을 강조한 곳이라면, 호국원은 국가를 위해 복무한 다수의 유공자를 위한 지역 기반에 따른 평등성과 일상적 추모 공간으로 보훈체계의 변화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국가차원에서 선별적 추모에서 보편적 예우 체계로 전환되어 묘지의 성격이 기념적 공간에서 생활권 기반 추모공간으로 유가족들의 접근성과 편의를 높이려는 목적이 담겨진 것을 말해준다.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국가원수의 묘역은 전직 국가 원수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국가장으로 치러져 매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장군묘역도 매장을 하였고 나머지 여러 묘역들은 화장 후 유해를 안장을 하였다. 전국의 호국원 경우도 처음에는 화장 후 유해를 땅에 안장을 하였지만 얼마 지난 뒤 자리가 없어 새로 봉안당을 건립하여 유해를 모시는 추세이다. 지금은 매장문화보다 화장문화가 85% 이상으로 바뀌어진 시대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일반 공원묘역에 모시려면 한 기당 2.5평 내외에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더구나 일부 선영이 있는 유공자의 가족이라도 묘역의 관리에 대한 회의감과 어려움에 따른 화장 선호도가 높아진 것에 영향이 미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지역의 호국원은 국가가 관리를 해주는 곳이므로 국가유공자 가족들에게는 명당과 같은 의미를 갖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설령 거주지에서 먼 곳이라도 유해를 안장하려고 이곳을 찾으려는 시도는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국가묘역 중 권역별로 처음 조성된 경북 영천호국원의 입지와 배치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자. 이곳은 동족상잔의 마지막 보류지로 호국영령들의 가슴 아픈 자취가 남아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므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곳이다. 특히 국가차원의 묘역 조성 사업의 경우 입지선정과 공간조성에는 터와 관련된 것이므로 명당의 좋은 생기를 받을 수 있도록 풍수지리적 공간설계를 필요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호국원을 위한 명당 터의 지표는 주산의 내룡맥이 응집된 주산을 의지하는 곳인지, 산봉우리가 목형·금형·토형을 이루어 좋은 지기를 표출하는 산형인지, 숲이 침엽수림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 곳인지, 입수하는 용맥이 힘 있게 뻗어 내려와 머문 곳인지, 전면을 감싸고 흐르는 물길을 얻는 곳인지를 살펴야 한다. 좋은 터란 산과 물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 곳이면 생태공간이 형성되면서 좋은 지기를 지속적으로 생성시키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호국원의 입지는 낙동정맥의 삼성산(589m)에서 뻗어내린 용맥이 시티고개(岾)를 지나면서 연이어 세 봉우리를 이룬 뒤 호국봉을 세운 곳을 의지한다. 이곳 호국원에 안장된 영령들이 잠든 곳은 낙동정맥의 정기를 받는다는 뜻이다. 즉 동란 시 최후 격전지였던 낙동전선이 갖는 상징성과 동기감응하는 터를 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주산의 산형은 금형체를 이루고 첫 봉우리의 용맥은 백호사격을, 두 번째 봉우리는 중심룡맥을, 세 번째 봉우리의 용맥은 청룡사격을, 마주하는 무학산은 안산사격으로 좌정하면서 서로 좋은 기를 조응·반사를 하는 형국이다.
처음 들어서는 곳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홍살문은 성역공간을 지키는 성스러운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면서 벽사를 위한 비보형태의 역할을 한다. 즉 호국영령을 편히 모시기 위해 나쁜 기가 유입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입수한 중심용맥을 승생기한 곳에 현충탑이 있고 바로 앞쪽에 현충문이 자리하였고, 그 아래는 봉안묘 약 2만여 기(基)가 안장되었으며 마지막은 홍살문을 세워 종축 배치를 함으로써 주산의 지기를 온전히 받게 하였다.
특히 홍살문 좌측에 세워진 영천 대첩비는 현충관과 마주하는 곳에 있어 봉안당 세 곳이 가까이 건립되면서 안치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지켜주는 형국이다. 또한 충렬당 2관 우측에 있는 호국지(護國池)의 경우 주산에서 입수한 용맥이 설기(洩氣)를 막기 위해 조성된 지당(池塘)이다. 이것은 용맥이 터를 이룬 뒤 물을 만나 머물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명당 터를 유지시키도록 비보형태의 득수를 조성한 것이다. 따라서 호국원의 중심건물과 부속건물의 배치형태는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지기를 받을 수 있도록 풍수지리적 공간설계를 한 것을 말해준다.
영령의 파장은 시간·공간 초월
국가가 돌본다고 등한시한다면
발복 역량 떨어질 수밖에 없어
최소 일년에 서너번 찾아뵈어야
영천호국원 입지의 전면에는 물길이 흐르고 있다. 이 물길은 호국봉과 이어진 용맥이 세운 어림산(510m)에서 발원한 계류수가 작은 소(沼)를 이룬 뒤 담수한 물길이 고촌천을 형성한다.고촌천은 다시 고경저수지를 형성해 물길을 머물게 한 뒤 서서히 흐르게 함으로써 호국원에 근접하면서 임수(臨水)형태를 이루어 2차로 계수즉지를 한다. 호국원 건물의 전체 좌향은 묘좌서향(동좌서향)을 하는데 남서방위로 빠져나가는 물길을 부속건물에 의해 불견하도록 되어 있다. 즉 호국원에 머무는 좋은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하도록 건물비보가 적용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립현충원에서 권역별 호국원 국가묘지를 조성할 때도 풍수지리적 터 잡이와 공간설계가 내재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모신 유족들에게는 명당 터의 좋은 에너지 파장을 감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가 관리한다고 혹여 특정 기일에만 찾아본다거나 등한시 한다면 발복의 역량은 떨어지는 것이 풍수지리학의 동기감응 논리이다.
옛말에 ‘남이라도 자주 보면 정도 생긴다’고 했다. 최소한 일 년에 서너 번은 찾아 뵈어야만 좋은 기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라도 가족분들이 어떤 일을 결행한다거나 변곡점이 필요할 시기는 반드시 찾아뵙고 알리는 것이 발복 시그널을 작동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다. 영혼의 에너지 파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글=박재락 <문학박사·영남대 환경보건대학원 풍수지리전공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