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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조하현 교수칼럼] 농지 전수조사와 CPTPP 가입 보류

정부는 ‘경자유전 원칙’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실제로는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정책 목표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대한 것이며 그 여파로 농지 거래 위축과 가격 하락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조하현 교수칼럼] 농지 전수조사와 CPTPP 가입 보류

한국후계농업경영인전북특별자치도연합회가 지난달 9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경자유전 원칙’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실제로는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정책 목표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대한 것이며 그 여파로 농지 거래 위축과 가격 하락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반발이 실제 농민들에게까지 퍼지자, 정부는 상속 농지 및 고령층 위탁 농업 등 투기 목적이 아닌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 강제처분 예외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불거진 농가의 불안감과 정책에 대한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농지 전수조사는 결코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 정부는 농지 전수조사 시행으로 농가 불만을 자극해 놓고는, 정작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CPTPP 가입을 ‘농민 반발’을 이유로 중단시켜 버렸다.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부르는 CPTPP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영문 약어이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FTA다. 일본의 주도 하에 2018년 12월 출범한 CPTPP는 현재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베트남, 싱가포르, 멕시코, 칠레 등 12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래 한국은 올해 연말 가입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따라 가입 신청이 보류됐다.

CPTPP 회원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이다. 따라서 CPTPP 가입의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가입 10년 후 실질 GDP는 미가입 대비 0.38%p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산업별 영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제조업은 관세 철폐에 따른 수출 확대로 연평균 약 6조 5000억원의 생산 증가가 기대되는 반면, 농업은 가격 경쟁력 열세로 수입이 늘면서 연평균 약 8500억원의 생산 감소가 우려된다.

CPTPP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와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바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2007년 한·미 FTA 추진 당시에도 전국적인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2008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논란으로 3개월간 촛불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격렬한 반발 속에서도 국익을 위해 한·미 FTA를 밀어붙였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에 이르러 마침내 공식 발효됐다. 그 결과 한·미 FT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불공정한 협정이라며 폐기를 여러 차례 언급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다 줬다.

하석상대(下石上臺)는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고, 다시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괸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근본적인 대책없이 임시방편으로 적당히 대응한다는 것이다. 농지 전수조사는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됐으나, 그 수단과 방식이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조사의 취지와 목적을 농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행하다 보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위탁 경영을 하는 농지까지 국가가 빼앗으려 한다는 불신을 자초했다. 정책 여파로 농지 가격이 폭락하면서 농지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지역 농협의 부실화 문제까지 나타났다.

우리나라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인 반면, 제조업 비중은 27%에 달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제조업을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CPTPP에 가입하면 관세가 면제되므로 자동차, 컴퓨터, TV, 냉장고, 철강 등 제조업 상품 수출에 매우 유리하다. 그러나 2모작이 가능한 동남아시아 농업 국가들과의 경쟁으로 국내 농업이 위축될 우려 또한 크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경제학의 ‘칼도(N. Kaldor)의 보상원리’가 정답을 말해준다. 어떤 사회가 상태 A에서 상태 B로 이전할 때 수혜 집단과 피해 집단이 존재한다면, 수혜 집단이 피해 집단의 불만과 손실을 충분히 보상해 주고도 남을 때 그 상태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CPTPP 가입이라는 상태 이전을 통해 큰 이득을 얻는 제조업 부문(수혜 집단)의 세수와 기금으로, 타격을 입는 농업 부문(피해 집단)을 충분히 지원하고도 남는다면 이는 국가 전체로서 명백히 이득이 되는 길이다.

이 대통령은 칼도의 보상원리를 바탕으로 농민들을 설득해 CPTPP 가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국내 사안이므로 잠시 중단하더라도 언제든 재개할 수 있지만, CPTPP 가입은 시기를 놓쳐선 안 될 중요한 국제적 사안이다. 사실 CPTPP 가입은 지금도 늦은 것인데, 올해 추진하던 것마저 중단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국가적 실익을 저버리는 행위이자 무책임한 국정 운영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 책임자들의 합리적인 상황 판단과 적절한 대처 능력이 절실하다. 농지 전수조사의 부작용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밀어붙이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후퇴하는 잘못을 범했다. 국정 운영은 단기적 여론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실익을 바라보고 설득과 결단으로 이끌어야 한다. CPTPP 가입 역시 눈앞의 반발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명확한 보상책과 함께 국가 미래를 위한 소신 있는 추진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하현 지속가능경제 연구소장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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