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속에 허우적거리는 두 소녀
길가다 이를 본 두 명의 다른 선택
‘뭔가 해야 해’ 생각에 머물기보다
주저없이 뛰어든 이가 어른 아닐까
조지 손더스 ‘폭포’(‘패스토럴리아’에 수록,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최근에 받은 인상적인 질문들이 있었다. 한 가지는 책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한 젊은 평론가가 나에게 불쑥 한 질문이었다. 북클럽을 한다면 어떤 사람들과 하고 싶냐고. 어물어물 대답하면서도 왜 그런 소릴 했는지 며칠 나를 돌아보게 됐다. 다른 한 가지는 수업 시간에 작품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 ‘어른’의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질문 아닌 질문. 수업 후 자문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두 가지 조건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나이 어린 사람을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 자신이 정말 어른의 자격을 가졌는지 계속 질문하는 사람.
조경란 소설가
이런 질문의 영향으로 조지 손더스의 ‘폭포’를 다시 읽었을지 모른다. 어른에 관해 생각하다가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으니까. ‘폭포’의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다. 시간도 짧고 현재 인물도 딱 두 명만 등장해서 각자 갈 길을 가고 있다. 만나서 무엇인가를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 “그러나 그는 목구멍 안에서 낮은 절망의 소리를 내면서 로퍼를 걷어차 벗고 물을 가로질러 길고 추한 몸을 내던졌다”까지 읽고 나면 어떤 복잡하고 강렬한 질문과 충격 속에서 소설을 처음부터 읽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고 보니 분량도 적은 이 단편은 마지막과 첫 문장이 유난히 길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어서겠지.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스는 학교가 파하는 시간에 세인트주드 학교 구내를 가로지르는 것이 신경 곤두서는 일임을 알게 되었는데, 만일 교복을 입은 가톨릭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괴짜거나 변태라고 생각할지 모르고 미소를 짓지 않으면 세상에 한이 맺힌 나이 든 투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중심인물 모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 한 문장 안에 충분히 드러났다. 미소를 지으면, 미소를 짓지 않으면,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가늠하고 걱정하는 사람.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즉 그를 내면화하는 건 바로 타인의 시선이다.
모스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살펴보면 그 스스로 마르고 긴 몸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고, 성공한 삶에서 이미 멀어졌다고 여겨서가 아닐지. 누가 모스에게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자기 의심과 부정성이 모스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아무튼 지금은 퇴근 후 자신의 셋집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뒤를 돌아보니 마흔이 넘어서도 하는 일 없고 아직 독립도 못해 어머니와 사는 동창 커밍스가 걸어오고 있다. 이제 시점이 커밍스로 바뀐다. 자신을 분투하는 예술가라고 여기는 커밍스는 모스를 사회적 권력 집단들의 구성원으로 여기고 있고. 둘은 인사도 없이 스쳐 지나간다.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들.
인물은 적지만 이 단편에는 폭포라는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적 상황이 있다. 그들은 각각 폭포의 다른 방향에서 같은 장면을 보게 된다. 카누를 탄 소녀 두 명을. 모스는 빨리 집에 가야 한다. 연주회를 앞둔 어린 아들에게 판지 키보드를 만들어 줘야 해서. 할부금을 못 내서 피아노를 압류당했다. 그런데 저 소녀들, 물살이 센데 노도 놓친 듯하다. 떠오르는 문장과 이미지들을 붙잡기 위해 바쁜 커밍스는 보트가 터지듯 갈라지는 걸 봤을 때야 걸음을 멈췄다. “뭔가 해야 돼.” 당황한 커밍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방향의 모스, 그는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슨 일에도 한 번도 유능했던 적이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소녀들에게 짝을 맞춰 스웨터를 입혔을 어머니가, 지금 저기서 허우적거리는 소녀들의 미래가 떠올랐다. 모스는 그렇게나 추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몸을, 마지막 문장처럼 순식간에 바꿨다. 다른 쪽에서 커밍스는 생각만 했다. “그래도 뭔가 해야 돼.”
자기 자신에 갇혀 있던 두 인물은 타인의 고통을 목격한 순간 다른 선택을 했다. 한 사람은 행동을, 한 사람은 여전히 생각만을. 작가가 제시하는 건 누가 더 윤리적 주체자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보인다. 그런 일에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 그게 어른의 조건 중 하나가 아닐지.
조경란 소설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