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 GPT로 생성된 이미지
[이코리아] 정부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선박에 적용하는 차세대 원자력 추진선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원전과 조선이라는 한국의 주력 산업을 결합해 향후 친환경 선박 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9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배경훈 부총리 주재로 ‘SMR 선박 기업 간담회’를 열고, ‘2035년 SMR 선박 건조 착수’를 목표로 한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해양용 용융염원자로(MSR) 개발을 주관하는 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해 삼성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센추리, 현대건설 등 관련 기업과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사업은 정부가 지난 3월 제5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한 ‘K-문샷 프로젝트’ 12대 미션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과제다. 정부는 소형화와 장기 연속운전, 높은 안전성을 갖춘 해양용 MSR 기반 SMR을 개발해 상선과 해양플랜트 등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해양용 MSR 기본설계와 선박 기본설계를 2029년까지 완료하고, AI 기반 가상 원자로 플랫폼 구축을 통해 설계 검증과 안전성 분석을 병행한 뒤 2032년 인허가 준비, 2035년 실제 선박 건조 착수까지 이어간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AI를 활용한 가상 원자로 플랫폼 구축으로 안전성을 사전에 검증하고 개발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선박용 SMR의 특성을 고려한 인허가 제도 정비와 전문인력 양성, 국제기준 협의 역시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와 업계는 원천기술 개발부터 실증, 상용화까지 전 단계를 아우를 ‘민관합동 SMR 선박 추진단’을 조속히 구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배경훈 부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의 원자력과 조선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향후 전개될 친환경 선박 시장 또한 K-SMR 선박이 주도하기 위해서는 민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SMR 특별법 제정으로 SMR 개발과 상용화를 뒷받침할 든든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K-문샷 미션으로 추진되는 SMR 선박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SMR 선박을 전략 과제로 내세운 배경에는 국제 해운업계의 탈탄소 압박이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8년부터 선박 온실가스 배출에 사실상 비용을 부과하는 새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기존 중유 중심 선박은 친환경 연료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메탄올과 암모니아, 수소, 배터리 등 기존 대안연료 역시 저장 공간, 독성, 연료 공급망, 장거리 운항 한계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원자력 추진선이 주목받는 상황이다.
원자력 추진 선박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연료 효율이다. 선박 한 척이 수십 년 동안 연료 재보급 없이 장거리 항해를 지속할 수 있고, 운항 과정에서 직접적인 탄소 배출이 없다. 연료탱크와 벙커링 설비 비중이 줄어들면서 선박 내부 공간을 화물 적재나 기타 설비에 더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운반선, 크루즈선처럼 막대한 추진 동력과 상시 전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선종일수록 원자력의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2월 “상업용 원자력 추진선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 기사에서 원자력 선박이 단순한 친환경 선박 대안을 넘어 미국의 해양산업 재건 전략과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밀린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조선소 투자와 미국 국적 상선 확대, 해양 인력 양성 등을 담은 조선업 부흥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차세대 SMR 기반 원자력 추진선이 미국 해양 경쟁력 회복의 한 축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WSJ는 원자력 기술의 해양 활용 범위가 선박 추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해양업계는 원자력 선박 외에도 항만 자체 전력 공급, 부유식 발전 플랫폼, 재난 대응용 해상 전력원, 나아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를 해상 원전으로 구동하는 방안까지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국에서 빅테크 전력 공급을 겨냥한 소형 원자로 프로젝트가 잇따라 추진되며 AI 인프라 확대와 원전 수요가 맞물리고 있다는 점도 이런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계의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영국의 로이드 선급협회는 최근 주요 크루즈선사들과 원자력 추진선 적용 가능성을 논의하며 “원자력을 검토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적용할 것인가로 논의 단계가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선급협회 ABS도 원자력 선박 인증 기준 수립 작업에 착수했고, 중국 역시 토륨 기반 원자로를 활용한 원자력 컨테이너선 개발 구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다. 우선 원자로 자체뿐 아니라 방사선 차폐 구조, 충돌·침몰 대비 안전 설계 등으로 인해 건조비가 기존 선박보다 높다는 점이다. 여기에 핵연료 공급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폐선 시 해체 절차, 선원 방사선 교육, 사고 발생 시 국제 책임보험 체계까지 새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국제 규범이 부재한 점도 문제다. 현재 상업용 원자력 추진선이 자유롭게 입항하고 운항할 수 있도록 정비된 국제 해사 규정은 사실상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만국이 원자력 선박 입항을 허용할지, 사고 시 어느 국가가 책임을 질지, 해상 충돌이나 침몰 시 대응 매뉴얼을 어떻게 통일할지 등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 외에도 수명이 다한 선박의 안전한 폐기와 원자력 선박의 안전성에 대한 대중의 수용 여부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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