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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동칼럼]‘제2의 이종욱 총장’은 누구인가

5월20일, 조용히 묻힌 한 기사가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쓴 ‘[기고] 故 이종욱 사무총장의 보건협력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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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제2의 이종욱 총장’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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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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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0일, 조용히 묻힌 한 기사가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쓴 ‘[기고] 故 이종욱 사무총장의 보건협력 정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이종욱 사무총장(1945~2006)의 서거 20주기를 기리며 쓴 글로, 그의 신념이었던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총장은 23년간 WHO에서 일하며 백신과 예방접종 사업을 이끌고 소아마비 퇴치에 기여한 인물로, ‘백신의 황제’라 불렸다. 그는 백신을 단순한 의료기술이 아니라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보건 정의의 문제로 바라봤다. 그는 현장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인지도 모른다. 연대는 국경도, 이슈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선택적으로 연대해왔는가.

5월20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에 탑승한 한국인 활동가를 이스라엘이 나포한 문제를 언급하며 국제규범을 어긴 “도를 넘긴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국내에선 5월 초에 대기업 노동조합의 이른바 ‘분배 투쟁’이 연대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이었던 5월18일, 스타벅스코리아가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와 함께 텀블러 판매 마케팅을 진행한 일은 역사적 고통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혐오와 희화화의 언어로 소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이제 국내외를 막론하고, 특정 이슈에 따라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5월21일,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다. 여름철 폭염을 앞두고 복지 사각지대를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은 대통령의 허물없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 장면을 보며 감염내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였던 폴 파머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 앞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고, 당신에게 그 고통을 덜어주거나 제거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당신은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타인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앞에 국적이나 계층, 이념 같은 경계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파머가 즐겨 사용했던 표현처럼, 그것은 결국 AMC, 즉 ‘도덕적으로 명확한 부분(areas of moral clarity)’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5월22일, 이주와 난민 문제를 다루는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빨대(Drained by Dreams)>였다. 영화감독인 섹 알 마문은 2000년 초반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에서 벌어진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 사건을 바탕으로 장편영화를 선보였다. 그는 감독과의 대화 자리에서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미국 이민 단속에 의해 집단 구금된 뒤 귀국했던 일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물었다. 한국에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폭압적으로 추방되고 있는데, 그들에게 향하는 연대와 돌봄의 마음은 왜 이렇게 다른가.

방글라데시 출신 배우 로빈은 실제 마석 공단에서 일했고, 단속 과정에서 동료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지루할 만큼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그 잔인할 정도의 무료함은 영화적 기술과 연출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 속 이주노동자의 실제 삶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들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제대로 환대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며칠 동안의 일상을 통과하면서 나는 한국에서 ‘제2의 이종욱’이라 불릴 다음 인물을 상상했다. 그것은 단순히 국격을 높이거나 K문화의 힘을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겐 인류학자로서 국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를 인류학으로 이끈 폴 파머는 “유일한 조국은 인류다(The only nation is humanity)”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도울 힘이 있는데 그 힘을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는 자괴감이다. 그 힘이 형성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그 힘이 이제 한국 안에 차올랐을 뿐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누군가의 응답을 기다렸다. 내 주변에서, 내 지역에서, 내 나라가 답해주기를 기다렸다. 내 나라가 그것을 못할 때는 나라 밖에서 답을 기다렸다. 그 응답이 차곡차고 쌓여 지금 우리가 여기 있다. 이제 수없이 많은 외침이 우리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겐 지금 그 답을 할 능력이 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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