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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쟁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스톤북’[류지연의 MMCA 소장품이야기⑮]

지금은 AI가 상상 속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실제와 구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뚝딱 만들어내지만, 이는 오랫동안 화가들의 영역이었다. 일찍이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현실과 비현실이...

전쟁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스톤북’[류지연의 MMCA 소장품이야기⑮]

1991년 유고 순회전 중 내전 발발

어렵게 돌아온 미술관 주요 소장품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돌, 도자기

고영훈 “내가 그리는 것은 존재”

고영훈 ‘스톤북’ 1985졎, 책 낱장에 아크릴릭 물감, 142x98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쟁은 사람 뿐만 아니라 미술작품과 문화유산까지도 희생량으로 만들곤 한다. 이달 초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일부 파괴된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의 골레스탄 궁전은 ‘이란의 베르사유’라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처럼 갑작스런 전쟁으로 돌아오지 못할 뻔한 작품도 있다. 고영훈의 1985년작 ‘스톤북’이 그랬다.

1980년대 말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에 개혁의 바람이 불던 때, 한국은 이들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본격 문화외교를 시작했다. 그러던 1989년, 한국은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한 기념으로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유고슬라비아 현대회화전을 개최했고 이듬해 1991년 한국현대회화 전시가 유고슬라비아 각지에서 순회전으로 열리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현대회화 유고순회전은 한국화와 서양화를 망라한 한국작가 25명의 작품 84점으로 구성된 대형 전시였다. 자그레브의 국립중앙미술관을 시작으로 류블랴나, 사라예보, 베오그라드까지 긴 여정으로 계획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1991년 하반기 유고 내전이 발발하면서 급작스럽게 전시를 중도에 마쳐야 했다. 중단된 전시의 출품작들이 ‘귀국’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1년 가까이 피말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마침내 주 유고 한국대사관의 노력으로 작품은 극적으로, 무사히 반환됐다. 전쟁 중 망실될 뻔한 작품이지만 지금은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잘 알려진 고영훈의 ‘스톤북’을 들여다보자.

고영훈의 ‘스톤북’ 중 일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지금은 AI가 상상 속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실제와 구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뚝딱 만들어내지만, 이는 오랫동안 화가들의 영역이었다. 일찍이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된 화면을 그려왔다.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만의 고유한 경험, 기억, 상상, 지각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일 수록 더욱더 독자적인 형식으로 인정받았다. 대상을 정밀하게 그리는 경향은 서구미술에서는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명칭으로 발전해왔는데 한국현대미술에서는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의 경향을 탈피하고자 1970년대 후반 이후 젊은 작가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캔버스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 사물의 물성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새롭고 낯설게 보이게 하는 특징을 추구했다.

특히 1980년대 활동하던 30대의 신진작가들은 1950년대 이후 출생한 전후세대였고, 새로운 의식과 표현방법을 시도하는 경향으로 주목받았다. 그전까지는 국전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믹한 화풍과 단색 계열의 추상화풍이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전쟁 직후 베이비부머 세대의 등장은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신선한 감각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의 극사실주의’ 혹은 ‘신구상회화’로 불리는데 그 대표작가가 고영훈이다.

고영훈 ‘6번째 나비’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고영훈은 제주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그림에 흥미와 재능을 보였다. 중학생이던 1966년 대한 적십자사 주최 청소년 적십자 국제 친선미전 및 인형전에서 ‘창고 있는 집’으로 최우수상 수상자 6명 중 1명에 뽑혔다. 이후 작가는 제주바다 더 너머 더 큰 세계에서 활동하기를 꿈꾸었고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본격 화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그림이란 2차원적인 평면의 공간이지만 3차원보다 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어느덧 자신만의 조형적 특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장자, 노자를 읽다가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거대한 우주를 떠올렸고, 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돌은 고향 제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이자 영적인 상징이기도 했다. 이와 달리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과 사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글자, 책을 떠올리면서 작가는 캔버스 속에서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조화로운 세계를 꿈꿨다.

고영훈 ‘제너레이션1-아버지’는 ‘제너레이션’이라는 제목의 3점 연작 중 하나로, 화가 자신과 아들의 얼굴을 중첩시키며 세대 변화를 존재론적으로 보여준 작업이다.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1985년작 ‘스톤북’은 1986년 두손갤러리 개인전에 출품됐다. 이 작품의 바탕은 영문 책을 한 페이지씩 붙이는 콜라주 방식으로 처리했고, 책 페이지에 입체감이 들도록 그림자를 그렸다. 그 위에 돌 여러 개를 분산시켜 그림자와 함께 입체적으로 그려냈는데 사진이라 해도 믿을 만큼, 실제라 해도 속을 정도로 생생했다. 이렇듯 이미지를 마치 실제 사물처럼 착각하게 되는 방식을 트롱프뢰이유(Trompe-l’œil, 눈속임)라고 한다. 화면 위에서 실제 종이와 그려진 돌이 동시에 존재하고 여기에 특정한 방향으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오히려 가짜를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사실 그림자는 빛과 물체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나 고영훈의 화면 속 물질들은 이미지이므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존재하지 않는 물체가 그림자를 드리운 상황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듯 정적인 화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림자가 계속 바뀔 것 같은 긴장감과 생동감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한다. 눈속임을 의도한 그림자이므로 고영훈의 그림자는 그림을 비추는 빛의 방향에 전혀 상관없이 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드리운다. 작가는 이러한 화면에 대하여 ‘나는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를 그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이 관람객에게 제대로 보여지기 위해서는 제목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번에 이해되고 번역의 오류도 생기지 않을 제목으로 ‘스톤(돌)+북(책)’이라 명명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문화계는 국제화를 기치로 하여 외부로 향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이즈음 미술계의 주목을 받던 청년작가로서 고영훈은 해외진출까지 고려해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고영훈의 2014년작 ‘해가 비친 달’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작가에게 돌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돌이 작가 자신 나아가 인간을 의인화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화면에 돌 세 개가 있다면 그것은 작가, 부인, 아들 등 자신의 가족을 그린 것이고 여러 개가 그려진 것이라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특히 어려운 역사를 살았던 제주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작가는 화면 위 흩어진 여러 개의 돌을 통해서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오랜 시간을 견뎌오고 그 세월을 담은 책장과 그 위에 그려진 돌의 대비는 어지러운 현실 너머 돌이 지닌 견고한 침묵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나라 밖 어두운 소식으로 많은 이들이 걱정어린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잠시나마 이러한 작품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술작품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영훈의 ‘스톤북’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상설전으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고영훈의 1992년작 ‘지성인’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고영훈(1952~) : 제주도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0년대 중반,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 화단에서 정교한 묘사를 바탕으로 한 극사실주의 회화를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1975년 전국 미술대학 제전에서 문공부 장관상을,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4년 일본 교토시립미술관 한일현대회화전, 1986년 제42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로 참여하며 국제적인 입지를 다졌고 이를 계기로 1987년 대한민국 미술기자상, 1991년 제 1회 토탈미술대상을 수상하였다. 1976년 제주 대호다방 전시를 시작하여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품하였는데 프랑스 중심으로 해외에서도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부터 돌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돌이다’ 라는 선언적인 제목으로 시작했으며 1980년대 들어서 돌과 책을 결합한 ‘스톤북’ 연작을 통해 존재의 본질과 시간성을 탐구했다. 1990년대에는 날개, 깃털 등과 같은 오브제를 함께 배치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달항아리를 주된 소재로 삼아 사물이 지닌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2006년부터 5년간 홍익대학교에서 부교수를 역임했다. 최근의 주목할만한 전시로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열린 한국관 설립을 기념 특별전시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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