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설치된 대구예술발전소 전시장 전경. 대구예술발전소 제공
올여름 대구에서 세계적인 거장의 전시가 동시에 펼쳐진다.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20세기 색채의 시인으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의 대구 첫 회고전이 열리고,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을 새롭게 조명하는 특별전이 마련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열리는 두 전시는 꿈과 현실, 기억과 소비, 감성과 자본이라는 현대미술의 두 축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앤디 워홀 작 ‘마를린’
◇ 대구문화예술회관 앤디 워홀전
캠벨수프 캔과 마릴린 먼로의 초상으로 기억되는 앤디 워홀은 단순히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예술과 광고, 브랜드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 소비사회의 작동 방식을 예술로 바꾼 전략가였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좋은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워홀이 남긴 이 유명한 문장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특별기획전 ‘앤디 워홀: 예술을 팔다(Andy Warhol: The Business of Art)’를 10월 25일까지 스페이스 하이브 1~5전시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팝아트의 아이콘을 ‘스타가 된 예술가’가 아닌 ‘예술을 비즈니스로 전환한 전략가’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캐나다 미술사가이자 워홀 연구자인 폴 마레샬(Paul Marechal)이 30여 년 동안 연구·수집한 작품과 희귀 자료 300여 점으로 구성된 대규모 기획전으로, 미국 순회전에 앞서 한국에서 먼저 공개되는 컬렉션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앤디 워홀 작 ‘에스콰이어(Esquire) 잡지 1969년 5월 표지.
이번 전시는 대전시립미술관 전시를 기반으로 하지만 대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도 추가됐다. 대구미술관이 소장한 1957년 제작 초기 일러스트 작품과 사후 제작된 ‘캠벨수프 캔’ 작품 등 두 점이 특별 공개된다. 특히 초기 일러스트 작품은 워홀 연구자인 폴 마레샬과의 협의를 통해 진본 여부를 다시 확인받은 희귀 작품으로, 대구 전시만의 차별성을 더한다.
전시는 광고, 패션, 레코드 커버, 영화, 텔레비전, 실험영화, 사진, 음악, 브랜드 협업, 정치와 자선사업,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워홀이 활동했던 영역을 10개의 주제로 나눠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그의 작업실 ‘팩토리(The Factory)’에서 이루어진 음악가와 예술가들의 협업을 소개하는 ‘뮤직룸’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다. 음반 재킷과 사진, 잡지, 공연 기록 등을 통해 워홀이 회화라는 장르를 넘어 문화 산업 전체를 하나의 예술 플랫폼으로 확장했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앤디 워홀 작 'Self-portrait with Fright Wig'. 대구문화예술회관 제공
워홀은 오래전부터 예술가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를 예견했다. 유명인의 초상화를 반복 인쇄하고 기업의 상품 이미지를 작품으로 끌어들인 것은 단순한 대중문화의 차용이 아니었다. 소비가 이미지를 만들고, 이미지는 다시 소비를 부르는 현대 자본주의의 순환 구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읽어낸 결과였다.
이번 전시 제목인 ‘예술을 팔다(The Business of Art)’ 역시 이러한 워홀의 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는 예술을 신성한 창작 행위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생산과 유통, 홍보와 소비까지 모두 예술의 일부로 바라봤으며, 오늘날 브랜드 협업과 콘텐츠 산업, 인플루언서 문화까지 예견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교육 기능도 강화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대구시교육청과 협력해 운영해온 ‘찾아가는 미술교실’을 전시 기간에는 ‘찾아오는 미술교실’로 확대 운영한다. 학생들이 직접 전시장을 찾아 감상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도록 구성했으며, 일반 관람객을 위한 상설 도슨트 외에도 미술평론가 김찬용의 특별 해설 프로그램을 총 10회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대전과 대구가 공동으로 유치한 도시 간 협업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대규모 국제전의 높은 제작비를 공동으로 분담해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해외 전시를 만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모델이다.
워홀은 한때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SNS와 플랫폼, 브랜드가 일상이 된 오늘날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이번 전시는 팝아트 거장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예술은 어떻게 상품이 되었고, 상품은 어떻게 하나의 문화가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여전히 워홀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자리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시민들이 현대미술을 보다 친숙하게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 예술가 지원과 함께 세계적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유치해 시민들과 더욱 가까이 호흡하는 문화예술기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설치된 대구예술발전소 전시장 전경. 대구예술발전소 제공
◇ 대구예술발전소 마르크 샤갈 판화전
마르크 샤갈을 떠올리면 대개 공중을 나는 연인과 푸른 말, 환상적인 색채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샤갈 예술의 진정한 깊이는 회화 못지않게 판화에서 드러난다. 전쟁과 망명이라는 시대의 상처를 지나며 그는 색과 선을 더욱 절제된 언어로 다듬었고, 판화는 기억과 사랑, 신앙과 인간에 대한 사유를 가장 농축해 담아낸 매체가 됐다. 특히 10년에 걸쳐 1천 장의 다색 석판으로 완성한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et Chloe)’ 연작은 20세기 판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본부가 운영하는 대구예술발전소는 특별전 ‘마르크 샤갈: 꿈과 환상을 색채로 그리다’를 30일부터 10월 11일까지 제2전시실에서 진행한다.
대구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회고전은 샤갈을 ‘색채의 화가’를 넘어 ‘위대한 그래픽 아티스트’로 다시 만나는 드문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는 지역 창작 기반의 실험적 예술공간인 대구예술발전소와 문화콘텐츠 전문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공동으로 마련한 기획전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세계적 거장의 전시를 지역에서도 접할 수 있도록 기획됐으며, 세계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샤갈의 작품세계를 대구에서 처음으로 본격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마르크 샤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기억과 감정, 꿈과 환상을 재구성하는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한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유대인 마을의 풍경과 동물, 악사, 연인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고향에 대한 기억과 인간에 대한 애정, 삶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이번 전시는 유화와 과슈, 드로잉, 템페라를 비롯해 판화와 아트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지만, 무엇보다 약 350점에 이르는 판화 작품을 중심으로 샤갈의 예술세계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본격적으로 확립된 그의 판화 작업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한층 깊어진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대표작인 ‘다프니스와 클로에’ 연작 전편이 공개돼 샤갈이 평생 탐구했던 그래픽 아트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설치된 대구예술발전소 전시장 전경. 대구예술발전소 제공
샤갈의 색채 언어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자유로운 색의 사용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감정과 기억의 흐름을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해석하기보다 색이 전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샤갈 예술의 또 다른 축인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영상으로 소개한다. 장유록 감독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성당에서 촬영한 스테인드글라스 영상을 통해 빛과 색이 만들어내는 샤갈 특유의 공간성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이 촬영한 샤갈의 초상사진도 함께 전시돼 거장의 삶과 예술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대구예술발전소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지역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과 세계 미술의 흐름을 함께 경험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의 역할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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