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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라 Insight]“산골 마을에서 시작된 치즈, 대한민국 식탁을 바꾸다”

치즈를 말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임실’을 떠올린다. 그만큼 임실치즈는 지역 특산품을 넘어, 한국 치즈 산업의 출발점이자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대형 유통망과 다양한 브랜드가 경쟁하는 시대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곳, 전북 임실에 닿는다.

[전라 Insight]“산골 마을에서 시작된 치즈, 대한민국 식탁을 바꾸다”

치즈를 말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임실’을 떠올린다. 그만큼 임실치즈는 지역 특산품을 넘어, 한국 치즈 산업의 출발점이자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대형 유통망과 다양한 브랜드가 경쟁하는 시대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곳, 전북 임실에 닿는다.  편집자

임실군 성수면의 작은 마을. 1960년대 초만 해도 이곳은 가난한 농촌이었다. 논밭은 척박했고, 농민들의 삶은 고단했다. 그때 이 낯선 산골에 한 명의 외국인이 들어온다. 벨기에 출신의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신부. 훗날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지정환 신부이다.

그는 “이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고민 끝에, 유럽에서 배운 치즈 제조 기술을 꺼내 들었다. 당시 한국에는 ‘치즈’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다. 우유는 있었지만, 가공식품으로서의 활용은 거의 전무했다. 주민들 역시 반신반의했다. “우유를 굳혀 먹는다”는 발상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정환 신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젖소를 키우고, 직접 치즈를 만들며 기술을 전수했다. 실패도 많았다. 온도 조절에 실패해 치즈가 상하거나, 위생 문제로 버려지는 일도 반복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기술 이전’을 넘어 ‘자립의 실험’이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1970년대 초. 임실에서 생산된 치즈가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였다. 당시 정부도 낙농 산업을 장려하던 시기와 맞물려, 임실은 자연스럽게 ‘국내 치즈 산업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1978년에는 국내 최초의 치즈 공장이 설립되며 산업화의 기반도 갖췄다.

흥미로운 사실은, 임실치즈가  ‘지역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임실군은 치즈를 지역 대표 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치즈테마파크 조성, 임실N치즈 축제 개최, 체험형 관광 콘텐츠 개발 등이 이어졌다. 특히 임실N치즈축제는 연간 수십만 명이 찾는 전국 단위 행사로 자리 잡으며, 지역 경제의 새로운 축으로 떠올랐다.

숫자로 보면 변화는 더욱 분명하다. 임실의 치즈 생산량과 브랜드 인지도는 압도적이다. 임실N치즈는 국내 자연치즈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며, 대기업 제품과 경쟁하는 몇 안 되는 지역 기반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임실을 ‘치즈 산업 특화지역’으로 지정하며 정책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적지 않다. 초창기 임실치즈는 판로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대도시 유통망이 부족했던 탓에, 직접 들고 나가 판매하거나 학교 급식 등을 통해 보급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일부에서는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회의론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피자, 빵, 샐러드 등 서구식 식문화가 확산되자 치즈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임실은 그 흐름의 중심에 서게 됐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람’이다. 임실치즈의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이를 지켜온 사람들의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1세대 낙농가에서 시작된 기술은 2세대, 3세대로 이어지며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 됐다. 최근에는 청년 농부와 귀농·귀촌 인구가 유입되면서, 스마트 낙농 시스템과 결합한 새로운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임실치즈는 단순한 지역 특산품을 넘어, ‘지방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보여준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술, 지역 주민의 참여, 그리고 정책적 지원이 결합할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를 증명한 사례다.

산골 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이제 대한민국 치즈 산업의 뿌리가 됐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낯선 땅에서 가능성을 믿었던 한 신부와 이를 받아들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임실치즈는 지역이 산업을 만들고, 산업이 문화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 치즈의 기준은 여전히 임실이다.  최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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