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넘어 현장형 AI로…비개발 직군까지 '직접 만드는 AI' 체제로 전환
아이디어·대시보드·교육 묶은 AXMS 가동…전사 업무방식 재설계 본격화
성과 확산이냐 숫자 경쟁이냐…SKT AX 승부처는 거버넌스와 현장 체감 효과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이 전사적 AX(AI Transformation) 전환을 공식화한 것은 단순히 업무 효율을 조금 높이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이번 구상의 핵심은 AI를 일부 개발 조직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구성원이 직접 다루는 일상적 업무 도구로 바꾸겠다는 데 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16일 비개발 직군을 포함한 전 구성원이 각자 업무에 맞는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1인 1 AI에이전트' 목표와 함께 지원 플랫폼, 관리 체계, 교육 로드맵을 사내에 공개했다. 앞서 회사는 이달 초에도 전 임직원이 최소 하나 이상의 AI를 활용하는 '1인1 AI'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조치는 선언을 실행 체계로 구체화한 수순으로 읽힌다.
이번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많은 기업이 말하는 AX가 여전히 '기존 업무 자동화' 수준에 머무는 반면, SK텔레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장 스스로 AI를 만드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회사가 제시한 방향은 코딩 경험이 적거나 없는 직원도 자연어 명령이나 모듈 조합 방식으로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범용형 '에이닷 비즈', 마케팅·데이터 추출 특화 '폴라리스',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 및 코딩 지원용 '플레이그라운드' 같은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AI를 잘 쓰는 회사가 아니라, AI를 직접 조립하고 현업 문제에 맞춰 재설계하는 회사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이번 AX 전략은 SK텔레콤의 대외 AI 사업과도 맞물린다. SK텔레콤은 최근 MWC26에서 AI 인프라·모델·서비스를 아우르는 '풀스택 AI' 역량을 전면에 내세웠고, 차량용 '에이닷 오토' 같은 AI 에이전트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즉 바깥에서 파는 AI 에이전트와 안에서 쓰는 AI 에이전트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내 실험과 현장 적용 경험이 결국 외부 사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려는 것이다. 사내 AX가 단순한 비용 절감 프로젝트가 아니라 'AI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내부 훈련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눈여겨볼 대목은 SK텔레콤이 AI 도입의 걸림돌을 기술이 아니라 조직 운영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함께 가동한 'AXMS(AX Management System)'는 개인이 낸 혁신 아이디어와 추진 과정, 피드백을 공개하고 이를 대시보드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는 좋은 아이디어가 특정 부서 안에 갇히지 않도록 하고, AI 활용 사례를 사내 지식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장치다. 기업의 AI 도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툴은 깔았지만 조직이 배우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AXMS는 기술 플랫폼보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인프라일 수 있다. AI를 배포하는 것보다 성과를 축적·복제하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텔레콤은 이미 일부 사례를 통해 AX의 실효성을 입증했다고 보고 있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보안 코딩 검증 자동화'는 AI가 코드 리뷰와 오류 예방, 수정 방향 제안까지 맡으며 연간 약 3천 시간, 약 30%의 업무시간 절감 효과를 냈다. 또 위치분석 솔루션 '리트머스(LITMUS)'는 교통·유동인구 이동과 수단을 추론하는 AI 알고리즘을 결합해 지자체 공급 등 사업 성과로 연결됐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이 거창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효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성과를 냈다는 점이다. 정재헌 CEO가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식의 '우문현답' 접근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번 전략은 조직문화 측면에서도 함의가 크다. 한국 대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종종 IT 조직이나 외부 컨설팅이 설계하고 현업은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SK텔레콤이 제시한 모델은 반대에 가깝다. 문제를 가장 잘 아는 현업 구성원이 먼저 개선 포인트를 제시하고, 개발 부서가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실제로 회사는 올해 2월부터 AX 혁신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해 약 180건을 접수했고, 이 가운데 핵심 프로젝트는 패스트트랙으로 선정해 3분기 내 상용화와 전사 확산을 목표로 공동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AI를 위에서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에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1인 1 AI에이전트'는 구호로는 강력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형식적 숫자 채우기로 흐를 위험도 있다. 직원마다 AI를 하나씩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내에 에이전트가 대량으로 생성될수록 품질 관리, 보안, 데이터 접근 권한, 중복 개발, 유지보수 체계 같은 문제가 동시에 커질 수 있다. AX가 확산될수록 거버넌스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특히 통신사는 고객 데이터와 네트워크 데이터처럼 민감하고 규제가 강한 정보를 다루는 업종인 만큼, '누구나 쉽게 만든다'는 접근과 '아무나 아무 데이터나 다룰 수 없다'는 원칙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향후 AXMS와 AI 보드 같은 내부 관리 체계가 단순 지원 조직을 넘어 사실상의 통제 타워 역할까지 맡아야 함을 뜻한다.
그럼에도 이번 시도가 의미 있는 것은 SK텔레콤이 AX를 비용 절감 캠페인이 아니라 성장 전략의 일부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AI를 잘 쓰는 직원 몇 명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전사 업무방식 자체를 AI 친화적으로 재설계하려는 방향이 분명하다. 프론티어 교육, 디자인 캠프, 부트캠프, 해커톤, 우수 성과 포상까지 단계별 프로그램을 깔아 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SK텔레콤이 노리는 것은 'AI를 도입한 통신사'가 아니라 'AI 방식으로 움직이는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그 전환이 성공한다면 이는 단순한 사내 혁신 사례를 넘어, 한국 대기업형 AX 모델의 유력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현업 체감 성과 없이 제도만 남는다면 또 하나의 디지털 유행어로 소진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 SK텔레콤이 던진 승부수의 무게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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